조이포스트 일본 치이카와마켓 치이카와 굿즈 배송대행 이용후기
1. 구매 상품명: Chiikawa Chiikawa Bakery bread like mochi mochi Mascot (Hachiware) 외
2. 구매 사이트(상점명): 치이카와마켓 외
3. 무게 & 배송비: 0.4kg & 1460엔
4. 신청서 번호: J468564
일본 합배송 오랜만에 신청해봤는데, 두 상품 다 입고도 빠르게 되었고
결제 후 출고도 잘 되었습니다.
상품들도 주문한대로 무사히 다 잘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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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포스트 일본 나가노마켓 농담곰 굿즈 배송대행 이용후기
1. 구매 상품명: Nagano Characters Four -character idiom (Nagano bear) 외
2. 구매 사이트(상점명): 나가노마켓
3. 무게 & 배송비: 0.3kg & 1460엔
4. 신청서 번호: J457796
일본 창고 장기 휴무와 겹쳐서 결제 이후 발송까지 조금 오래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발송 후에는 통관도 하루만에 완료 되었고 빠르게 상품 받았습니다
상품도 주문한대로 무사히 다 잘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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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야 레나 퍼스트 사진집 스페셜 인터뷰 번역
의역, 오역 주의
퍼가실 땐 출처 남겨주세요
모리야 레나 1st 사진집 <笑顔のグ-、チョキ、パ-> (웃는 얼굴의 묵찌빠)
레나아 스페셜 인터뷰~
진심 어린 미소를 잔뜩 담은 소중한 한 권이 되었습니다
촬영 마지막 날, 레나 씨가 ‘인생의 보물이 될 수 있는 한 권으로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 1st 사진집 ‘미소의 묵찌빠’가 드디어 발매되었습니다! 완성된 지금의 기분을 알려주세요.
사진의 베리에이션이 정말 풍부해서 보면서 질리지 않는 한 권이 되어서 기뻐요. ‘토끼 귀를 써보고 싶다’라든지, 제가 해보고 싶던 것도 넣을 수 있어서 대만족인데요… 사주시는 분들이 계실까요…? 그것만큼은 조금 걱정이에요. 그래도 이 사진집을 계기로 좀 더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진집을 발매한다는 것은 언제 알았습니까?
사쿠라자카46의 라이브가 끝나고 나서 스탭분이 ‘할 얘기가 있으니까 잠깐 와주세요’라고 부르셨어요. 거기서 ‘사진집을 발매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전달받았는데요. 너무 생각지도 못해서 처음엔 ‘정말 저인가요?’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귀여운 여자아이의 사진집을 보는 걸 좋아해서 선배님의 사진집을 산 적도 있지만, 제가 사진집을 내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해서 정말 놀랐어요. 기쁜 것보다도 ‘설마 내가…’라는 기분이 컸네요.
알게 된 가까운 사람들의 반응을 알려주세요
가장 먼저 보고한 건 어머니였어요. 좋아하시긴 했지만 그 직후에 바로 ‘괜찮은 거야?’라고 걱정하시기도 했네요(웃음). 그 후에 아버지와 오빠에게도 보고했는데 두 명 모두 ‘에, 레나가?!’라며 어쨌든 놀랐어요. 멤버들은 모두 ‘수영복 기대돼!’라고 그 얘기만 해서(웃음). (와타나베) 리사 씨나 마츠리짱 (마츠다 리나), (야마사키) 텐짱한테 특히 놀림받았던 것 같아요. (오오누마) 아키호와 (마스모토) 키라의 2대 대 불가사의 콤비는 ‘열 권 살게’라고 얼렁뚱땅 얘기했어요. 그렇게 말했으니까, 꼭 사줘야 돼♡
사진집 촬영을 위해 준비했던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몸을 열심히 만들었어요. 여성스럽고 유연한 바디 라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서, 촬영 3주 전부터는 헬스장에 다니면서 트레이닝을 시작했어요. 살찌는 것도 그렇지만 너무 마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 딱 좋은 찾는 게 어려웠어요. 트레이닝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식생활도 조절했어요. 정말 좋아해서 매일 먹던 초콜릿은 칼로리도 지방질도 높기 때문에 참기로 했어요. 일하면서 한입만 먹은 적도 있는데, 그 외에는 (초콜릿과) 3주간 헤어지는 게 처음이어서 정말 괴로웠어요… 그래도 먹고 싶어지면 ‘지금을 극복하면 로케 장소의 이시가키 섬이나 나가사키에서 무조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분발했습니다. 집에서나 일할 때 비는 시간에는 저 나름대로 포즈도 연구했어요. 선배님의 사진집이나 잡지를 많이 보면서 귀엽다고 생각한 포즈를 저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분명 어색했겠지만요… 저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촬영할 때의 추억을 알려주세요
제가 도쿄 출신이어서 도쿄에서도 촬영을 했고, 지방 로케에서는 이시가키 섬과 나가사키에서 촬영을 했는데요, 다 전부 즐거워서 정말 계속 웃었어요. 날아갈 듯한 강풍 속에서 일본 서쪽 끝에 갔던 것도 귀중한 체험이었고, 해변에서 탔던 말도 귀여웠어요♡ 이시가키 섬에서 촬영할 때는 빵이나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요, 다 맛있어서 행복했어요. 나가사키의 호텔에서 먹었던 부야베스 짬뽕과 부르기뇽(이름이 이게 맞을까요?)도 일품. 나가사키 명물인 카라스미(염장한 숭어알)는 다음날 부을까봐 걱정돼서 꾹 참았던 건 조금 아쉬움이 남네요. 오키나와의 슈퍼에서는 지마미 두부를 샀는데요, 너무 맛있어서 푹 빠져버렸어요. 촬영 마지막 날, 스탠다드 푸들을 만났던 것도 좋은 추억…. 헤아리자면 끝이 없네요. 촬영 기간 중에는 거의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촬영을 했지만 피곤하거나 졸린 것보다는 즐거운 기분이 더 커서, 힘들었던 기억이 없습니다(웃음).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점점 찍히는 게 즐거워져서 종반에는 ‘아, 벌써 끝나는구나’하고 슬퍼졌어요.
처음으로 수영복이나 란제리에도 도전했는데요, 긴장했나요?
의상 피팅 때는 부끄러웠는데요, 수영복을 입고 눈앞에 해변이 있으니까 ‘와~ 바다다~♡’하고 텐션이 올라서 부끄러운 마음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어요. 그건 저 스스로도 놀랐어요. 란제리 사진도 스탭분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셔서, 많이 웃고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의상에 대한 요청사항도 말하고 ‘이런 수영복이나 란제리를 입어보고 싶어요’라고 전했더니 그 취향을 반영해 주셔서 매우 기뻤습니다.
사진집 중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컷을 알려주세요.
모든 장면을 다 정말 좋아하는데, 하우스텐보스의 튤립 밭에서 촬영했던 핑크 드레스 컷은 특히 마음에 들어요. 이 드레스는 피팅 때부터 너무 귀여워서, 바로 결정했던 옷이에요. 그리고 역시 토끼 씨♡ 스타일리스트분한테도 ‘토끼짱이 되고 싶다’고 전달했더니 토끼 귀와 부드러운 옷을 준비해 주셨어요. 꿈을 이룰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여기에 수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깅엄체크의 비키니 장면에서 은 대야 안에 웅크리고 앉았어요. 수영복을 입고 대야에 들어가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기도 하고, 앞으로도 평생 없을 것 같아서, 최고의 추억(웃음). 스탭분들과 모두 같이 보면서 몇 번이나 웃었어요. 뭔가 기회가 있다면 여러분들께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사진집 촬영 중에 모래사장에서 자연스럽게 ♡를 그리고 있었네요(웃음)
아하하, 그렸습니다♡(웃음)
그룹에서도 완전히 부릿코 캐릭터로 정착했는데요, 레나 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괴롭혀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룹에 막 들어갔을 때는 ‘뭐라도 좋으니 캐릭터를 만들어야만!’하고 초조해하던 시기도 있었는데요, 정신 차려 보니 부릿코 캐릭터가 되어있어서. 저한테는 조금 예상 외였지만, 멤버들이 장난으로 부릿코를 하고 있는 저를 따라 해주는 일도 많아져서, 그걸 보는 게 즐거워요.
“레나아”라는 별명도 정착되었는데요. 마음에 드나요?
처음에는 “레나-”라고 불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소코사쿠(거기 돌면, 사쿠라자카?)”에서 하라이치 사와베 씨가 저의 그 발언을 잘못 들었던 것을 계기로 “레나아”가 조금 이상한 억양으로 정착되었을 때 ‘정정할까’라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이름만 부르는 것보다 허들이 낮아지고 선배님들도 친근하게 불러주셔서, 다행이에요♡
가족들이 등을 밀어준 것이 아이돌이 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연수생부터 시작해, 3rd 싱글 ‘오월비여’에서는 사쿠라에이트로 대발탁. 사쿠라자카46에서의 활동도 매우 충실하네요!
덕분에요, 네. 사쿠라에이트는 많은 곡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게 가장 기뻤어요. 녹음도 MV 촬영도, 조금 서투른 안무 외우기도. 다 같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겁고, 정말 좋아요. 센터가 되고 싶다든가 포지션에 대한 고집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물론 전력을 다해 달려나가고 싶고,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면 위를 목표로 하고 싶다는 것은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주어진 것 이상의 노력을 발휘하는 것이 매일 저 자신에게 부여하고 있는 목표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돌이 되는 게 꿈이었나요?
그게, 그런 건 아니에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이나 ‘키라링☆레볼루션’ 등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을 자주 불렀던 기억은 있어요. 처음 사주셨던 CD도 분명히 ‘키라링☆레볼루션’ 관련이었던 것 같은데, 가사지를 보면서 제대로 연습하거나 했지만 당시,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유치원에 다녔을 시절부터 계속 보육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만 꿨어요. 중학교 수험을 봤는데 그때도 보육교사를 목표하기 좋을 것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 일관 학교를 선택했고, 대학교도 보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유치원을 다녔을 때 담임선생님이 너무 좋았어요. 항상 웃는 얼굴로 저희와 같은 시선이 되어서 함께 놀아주셨던 선생님으로, 저도 언젠가 그런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선생님이 유치원을 그만두셨을 때, 너무 슬퍼서 엄청 울었던 건 지금도 엄청 잘 기억하고 있어요.
거기서부터 갑자기 바뀌어서,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에 지원하겠다고 생각한 계기를 알려주세요.
엄마와 오빠가 인터넷에서 찾아서 ‘이런 것도 있네’하고 알려주셨어요. 오빠가 원래 케야키자카46의 팬이었던 것도 있고, 저도 TV에서 노기자카46, 케야키자카46을 보면서 어딘가 동경하고 있던 것도 있었지만,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계속 보육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설마 제가 오디션을 보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응모용 사진을 엄마가 수동 카메라로 찍어주셨는데 친구랑 놀고 돌아와서 기일이 촉박하다는 걸 깨닫고 급하게 찍어서, 급하게 찍은 분위기가 나와버렸을지도 모르겠네요(웃음). 그 사진으로 세미나에 응모했더니 추첨에서 당첨되어서, 무려 그 후에 대학 입학식과 세미나가 겹쳐버리는 사건이 발생. 둘 다 같은 4월 1일이었어요. ‘어떡하지…’ 하고 고민하다가 둘 다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일단 대학 입학식에 갔습니다. 그 후에 오리엔테이션을 패스하고 중간에 나와서, 세미나로 급하게 갔어요. 조금 늦었지만 어떻게든 맞춰서 세미나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세미나에서는 스탭분이 손에 든 자료를 보면서 한 명 한 명 체크해서 ‘뭘 보고 계시는 걸까’하고 심장이 쿵쾅거렸어요.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귀여운 복장이었는데, 저만 입학식에서 돌아와서 정장을 입고 들떠있는 느낌이 들어서, 괜히 긴장되었습니다. 그 세미나의 마지막에 사진을 찍었는데 ‘나만 정장…’이라는 게 걸려서, 굉장히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세미나가 끝나고 ‘1차 오디션은 면제입니다’하고 연락이 와서, 오디션 시드권을 받았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저 놀랐습니다.
오디션 중에는 긴장하고만 있었을 뿐
하지만, 의외로 배짱이 있었을지도?!
오디션을 위해 준비했던 게 있나요?
노래 심사를 위해 노래방에 계속 다녔어요. 혼자 가는 건 조금 부끄러웠기 때문에 엄마에게 부탁해서 같이 갔어요. 첫 심사에서는 ‘세상 누구보다 꼭’을 골랐습니다. 엄마가 자주 부르는 걸 많이 들어서 저도 좋아하게 됐습니다. 참고로, 이 곡은 심사에선 아카펠라로 불렀습니다. 정말 정말 긴장했어요. 최종 심사에선 오오하라 사쿠라코 씨의 “눈동자”를 불렀는데 이 곡은 꽤 열심히 연습했어요. 엄마한테도 조언을 많이 받았습니다. 객관적이 되어보자고 생각해서 제 노래를 녹음해서 듣고 ‘전혀 안 돼’라고 우울해하거나, 어쨌든 필사적이었어요.
오디션에 참가하는 아이들은 다들 정말 귀엽고, 대기실에는 오디션에 익숙한 것 같은 아이들이 많아서 계속 ‘하…’하고 압도당했어요. 어느 심사든 엄청나게 긴장했습니다. 너무 긴장해서 면접에서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요. 잘 안 돌아가는 머리를 쥐어 짜내서 필사적으로 대답했어요. 그랬다는 건 잘 기억하고 있어요(웃음). 2차 심사 때는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하고 당황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는데, 해보니까 의외로 ‘할 수 있을지도!’라고 생각했어요. ‘여기가 노력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라고 느끼면 저한테 시동을 거는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웃음). 스스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주변에서는 ‘배짱이 있네’라고 들을 때가 꽤 있어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심사에서 계속 붙어서 ‘어디까지 갈 수 있으려나?’라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던 중, 멋지게 합격!!
최종 심사는 합격자는 번호가 불리면 스테이지에 올라가는데,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은 보통 긴장되는 게 아니었어요. 거기까지 도착하면 역시 합격하고 싶은 마음도 강해지잖아요. 제 엔트리 넘버는 16번이었는데 ‘16번’이라고 불리던 순간에는 너무 놀라서 온몸이 떨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스테이지에 올라갔더니 세계가 바뀐 것처럼 느껴졌고 ‘멤버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해나갈 수 있을까?’라는 마음도 있었고, 불안도 즐거움도 두근거림도 여러 가지 기분이 한 번에 몰려왔습니다. 합격을 가족들에게 알렸더니 모두 기뻐해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뻐했던 게 오빠였어요. 굉장히 텐션이 올라있었습니다(웃음).
연수생부터 시작해서 ‘케야키자카46’로
앞만 보고, 계속 달렸습니다
처음엔 연수생부터 시작했네요.
맞아요. 저 나름대로 여러 복잡한 마음도 안고 있어서,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하고 진심으로 생각했어요. 먼저 멤버가 된 동기들을 조금이라도 따라잡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레슨을 받았지만, 대학에 다니면서 레슨을 받느라 매일이 빡빡한 일정. 보육교사의 실습과 연수생 라이브의 안무를 외워야 하는 게 겹쳐서 벅차고 힘들었어요. 그래도 함께 레슨을 받던 모두가 정말 긍정적이고 열심히 해서 ‘동료가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이 솟구쳤어요. 처음으로 팬분들 앞에 섰던 건 잊을 수 없는 연수생 라이브. 스테이지 위에서 조명을 받고 그런 저희를 팬분들이 사이리움을 들고 응원해 주시던 풍경이 반짝반짝거려서요. 그때 ‘나, 아이돌이 됐구나’라고 진짜로 실감이 났어요.
희망했던 케야키자카46에 가입하는 것이 결정되고, 본격적으로 아이돌로서의 활동이 스타트. 그때부터는 어땠나요?
스트리밍으로 개최됐던 케야키자카46의 라스트라이브가 멤버로서 배정되고 첫 라이브였어요. 그룹이 다시 태어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하는 불안감도 있었고 오디션을 보기 전부터 정말 좋아했던 그룹이 끝나버린다는 것에 대한 서운함도 컸습니다. 하지만 선배님들의 기분을 생각해 보면 그건 헤아릴 수도 없는 마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후배인 저희가 끙끙 앓을 수도 없을 것 같았어요. 억지로라도 기분을 바꾸려고 노력해서 ‘사쿠라자카46’라는 새로운 그룹으로 노력해 나가겠다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때부터는 아무튼 변화가 너무 빨라서 필사적이었어요. 그런 국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룹 활동은 항상 정말 즐거웠습니다.
멤버 모두 친하고요.
맞아요. 그리고 그건 선배님들이 모두 정말 상냥하셔서 저희 후배들이 편하게 있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셔서 그런 것 같아요. 선배님들한테는 항상 감사한 마음이에요. 막 들어갔을 때는 동경하는 선배뿐이어서 긴장해서 눈을 보고 얘기도 못하고, 한마디 나누는 것도 정신이 없었는데요, 요즘엔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정말 좋아하는 (와타나베) 리사 씨와도 많이 같이 지내게 돼서 감동. 엄청 장난치면서 같이 까불어주는 리사 씨는 저에게는 친언니 같은 존재예요. 졸업하셔서 정말 아쉽지만 리사 씨의 앞으로의 행복을 바라고 있습니다!
사적으로도 친한 멤버는?
오오누마 아키호와 동갑이고 연수생 때부터 함께였기도 해서, 밥을 같이 먹거나 카페에 가거나 해요.
그룹 활동을 계속하는 중에 우울해진 적도 있나요?
물론 있습니다. 사쿠라자카46이 되고 처음으로 MV에 참여했던 게 “Buddies”였는데 그게 첫 MV 촬영이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던 중에 ‘적은 인원으로 자유롭게 춤춰주세요’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실제로는 곡의 해당하는 파트를 부르면서 춤을 춰야 했었는데 ‘자유롭게 춤추라니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어떡하지?’하고 작게 패닉이 왔어요. 춤추는 건 빙글빙글 돌거나 하면서 어떻게든 했는데 촬영이 끝나고 나서 춤에 정신이 팔려서 노래를 전혀 못 불렀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파트는 절대 MV에 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더니 ‘나, 뭘 한 거지…?’하고 크게 패닉. 주변의 멤버가 당연한 듯이 하는 걸 못 했다는 게 한심하고 분해서, 영문을 모를 정도로 눈물이 흘러넘쳤습니다. 그날은 그 장면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서도 계속 울고 있었는데, 다음날에도 촬영이 계속됐어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너무 많이 울었던 바람에 눈이 퉁퉁 부어버렸어요. 제 프로의식의 부재에 우울해져서…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제 모습이 너무 티가 나서 모두에게 들켜버렸어요. (사이토) 후유카 씨 같은 선배나 매니저분들이 ‘괜찮아, 그럴 수도 있는 거지’하고 격려해 주셨어요. 위로해 주시는 자상함에 또 울어버렸어요. 아무튼 계속 울고 있었네요. 그리고 2nd 싱글 ‘BAN’의 MV 촬영의 안무를 배울 때도 슬럼프에 빠져있었어요.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데, 신기할 정도로 간주 부분의 춤이 몸에 익지를 않았어요. 혼자 출 때는 되는데 다 같이 추면 안 돼서.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으로 타이틀곡 선발 멤버가 되어서 부담감이 커서 제가 의식하는 것 이상으로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나 더. 3rd 싱글의 ‘PERIMETRON’의 팀 촬영을 했을 때, 표정 짓는 게 정말 어려워서 뻣뻣해져 버렸는데 촬영이 끝나고 OSRIN 씨가 저를 불렀어요. ‘너는 좀 더 여러 가지 표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지금 이대로는 아까워’라고 말해주셨어요. 그 촬영 중에 계속 ‘나, 못 하고 있구나…’라고 막연하게 느꼈던 것도 있어서, 한심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야기가 끝난 직후에 화장실로 달려가서 혼자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많은 눈물을 흘렸네요(눈물)
저, 평소에는 그렇게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닌데요. 이렇게 돌아보면 엄청 울었네요(웃음). 그것도 분해서 운 것밖에 없네요. 그래도 그건 향상심의 반증이기도 한 것 같아요. 분하다거나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경험을 거쳐서, 잘 못했다고 너무 우울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어요. 지금은 끝까지 반성하고 나면 그 후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멋져요! 레나 씨가 일 중에서 좋아하는 건 어떤 건가요?
어떤 일도 진심으로 즐거운데요, 팬분들과 함께하는 라이브가 역시 정말 좋아요. 라이브 시작 전에 멤버 모두 원진을 만드는 순간에 우선 엄청나게 기합이 들어가고, 처음 Overture가 흐를 때 스스로 마음을 북돋아 줘요. 그 순간은 두근두근하지만, 그건 좋은 긴장감이에요. 코로나 때 라이브가 없던 시기엔 계속 ‘라이브 하고 싶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라이브가 다시 가능하게 되어서 지금은 팬분들이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대신 스틱 벌룬으로 소리를 많이 내주시는 게 정말 기뻐서, 텐션이 올랐어요. 라이브의 준비는 힘든 부분도 많지만 스테이지 위에 올라가서 팬분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전부 날아가 버릴 정도로, 엄청나게 즐거워요! 그러고 보니, 한 번이지만 라이브 때 객석에 있는 오빠를 발견해버린 적이 있어요. 꽤 앞쪽 자리에 앉아있어서 엄청 어색했어요(웃음).
전국 투어에도 나오셨어요!
첫 전국 투어는 모두 서로를 격려하면서 열심히 했던 라이브였다고 생각해요. 안무가 TAKAHIRO 선생님이나 연출가분들이 매회 공연이 끝난 직후에 조언을 해주시고 반성할 점을 개선해나가면서 스테이지를 업그레이드 해나갔습니다. 투어라고 하면, 그 지역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은 추억이거든요. 후쿠오카에서 먹었던 ‘신신’ 라멘이 너무 맛있어서 리필했어요(웃음). ‘좀 있다가 라이브에서 많이 움직이니까 괜찮아’라고 저한테 좀 물러졌었어요. 어디서 먹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도미챠즈케도 일품이었습니다.
백스 라이브도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스테이지에 서보니 어땠나요?
‘사쿠라 에이트 이외의 멤버도 이렇게 한 명 한 명 빛나요!’라고 어필할 수 있는 곳으로서 마음껏 퍼포먼스 할 수 있어서, 최고로 즐거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쭉 마이페이스
생각을 하는 만큼 우유부단해졌을지도
조금 전에 오빠의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가족에 대해 물어봐도 될까요? 가족 구성원에 대해 알려주세요.
부모님과 2살 위의 오빠까지 네 명입니다. 어머니는 상담을 많이 해주시고 제가 고민할 때는 자기 일처럼 같이 생각해 주세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친구 같은 존재면서 가장 의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사나 매너, 예의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엄격했어요. 윗분을 대하는 태도, 감사의 인사를 귀담아듣는 것, 집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가지런히 두는 것 등은 어머니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몇 번이나 들어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것 같아요. 아버지는 그런 저희의 대화를 지켜봐 주셨어요. 아버지는 재미있는 분이에요. 그렇지만 우스운 사람은 아니에요… 뭐랄까… 비교적으로 저를 응석받이로 만들어주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어요. 오빠는 2살 위이고 지금도 사이가 좋아요. 굉장히 말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으로 야구를 정말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는 항상 오빠 뒤에 붙어서 놀았어요. 오빠가 친구와 하는 전쟁놀이에 끼워달라고 하거나, 남자애 같은 놀이를 할 때가 많았으려나요. 그래도 오빠는 온화한 성격으로 ‘와~’하고 싸움을 걸어오는 타입은 아니었어서, 부드러운 전쟁 놀이였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알려주신 태어났을 때의 에피소드를 알려주세요.
새벽 5시쯤 태어났던 것 같아요. 예정일보다 20일 정도 일찍 태어나서 2340g 정도로 작았던 것 같은데, 굉장히 건강했다고 합니다.
“레나”라는 이름의 이유는?
어머니가 “레”라는 글자를 마음에 들어 해서 이 한자를 넣고 싶었던 게 원래 계기였던 것 같아요. “나”는 분명 울림이 좋아서 합친 거 아닐까요. 아름답고, 마음도 아름답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풍요로운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는 것 같아요. 가족이나 친구들은 “레나”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요.
학원은 어떤 걸 다녔나요?
유치원 때는 그림 교실에 다녔어요. 하지만 그건 물감으로 즐겁게 좋아하는 걸 그리는 놀이 느낌이었을까요. 그리고 발레와 피아노도 배웠는데 발레는 정말 싫어했어요(웃음). 오빠가 다니던 수영장 옆에 마침 발레교실이 있었던 것 같아요. 3살 정도의 저는 별로 흥미가 있었던 게 없던 같은데 부모님도 뭔가 배우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래서 ‘발레, 배워볼래?’하고 말씀하셔서 초등학교 1학년쯤까지는 발레교실에 다녔는데, 레슨에 가서 울고, 발표회도 싫어서 울고, 어쨌든 계속 울었어요.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잘 못해서 무대에 오르기 몇 분 전에 ‘올라가기 싫어’라고 크게 울었습니다. 모처럼 받은 화장도 전부 지워져버려서요. 부모님도 ‘그렇게 싫으면 그만둘까?’라고 생각하셔서 그만두게 됐어요. 그래도 스스로도 당시에 뭐가 그렇게 싫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레오타드도 귀여웠고 선생님도 착하셨고 싫어할 부분이 없었을 텐데, 당시의 저는 뭐가 그렇게 싫었냐고 물어보고 싶어요(웃음). 피아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 정도까지 배웠어요. 피아노는 싫어하진 않았는데요. 저, 연습을 거의 안 해서 거의 안 늘었어요. 당연한 거지만 좀처럼 잘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만뒀습니다.
어렸을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변한 부분이나 변하지 않은 부분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흠… 변한 부분은 조금씩이지만 낯가림이 나아지고 있는 걸까요. 옛날에는 꽤 심했는데 이 일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좋아져서 처음 보는 분들을 대할 때도 ‘내가 먼저 말을 걸어보자’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우유부단해졌어요. 옛날에는 뭐든 딱 정했는데, 왜 그럴까요(웃음). 아마 이런저런 걸 알게 되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늘어나서일까요? 그래도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에 지원하자고 결심했을 때는 전혀 망설이지 않았어요. 나이 때문도 있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라고 정했으니까 그때는 확 긍정적인 마인드였어요.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정할 때는 전혀 우유부단하지 않은데요. 대체로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실패하기 쉬우니까요. 그래서 거기선 별로 모험을 안 하고 항상 먹는 걸 시킬 때가 많아요. 반대로 마이페이스인 부분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어요. 마이페이스라는 건 주변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의미에선 좋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룹 활동을 하는 중에는, 메이크업 순서가 늦은 편이면 대기실을 나오는 게 가장 마지막이 되어 버리는 경우는 자주 있어요. 뭘 해도 늦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서두른다고 생각하는데도, 금방 늦어져서. 예를 들어 ‘오늘은 몇 분에 출발하는 차를 타자’고 스스로 정했는데, 두 대 지난 뒤의 전차를 타게 되어버렸다, 같은 일은 자주 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은 청춘을 엔조이!
공부만은 좀 서툴렀습니다
학창 시절의 추억을 알려주세요
사실 저는 초등학교 때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어서요. 그래서 중학생이 되었을 때 새로운 환경에 뛰어들어서 변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중학교 수험을 보기로 결심.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수험 공부를 시작했어요. 목표로 하고 있던 중, 고등학교 일관 여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6년간은, 계속 부활동을 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의 저는 그다지 어떤 것에 열중하는 게 없었는데, 부활동은 꼭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가능하면 운동부가 좋겠다고 생각해서 오리엔테이션을 돌면서 치어같이 의상이나 도구가 귀여운 배턴 트월링부에 끌렸어요. 항례의 해외연수를 갈 수 있다는 특전도 중학교 1학년인 저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이어서 입부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힘든 부활동이었어요. 학교를 가는 평일은 물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도, 매일 부활동. 강호 학교는 아니었지만 전국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고, 문화제에서 발표하는 무대도 있고 해서, 가는 날이나 가지 않는 날이나 어쨌든 연습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줄곧 동경하고 있던 댄스부로 옮겼어요. 댄스부는 고등학생이 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들어갈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었어요. K-POP의 좋아하는 곡에 맞춰 춤추거나, 컨템포러리나 재즈댄스 같은 공연에도 도전하고, 다 같이 와글와글하면서 굉장히 즐거웠어요. 춤추는 건 왠지 좋아했어요. 배턴트월링부는 선후배 상하관계가 엄격했는데 댄스부는 전혀 달랐어요. 후배한테 불려갈 때도 있었는데 ‘뭐 어때’라는 생각이었어요(웃음).
청춘을 만끽하셨네요.
네. 부활동도 열심히 했고, 인간관계도 좋았어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절친이 되었는데요.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는데도 계속 함께였어요. 그 아이가 언니 같은 캐릭터고 제가 동생 같은 캐릭터여서 굉장히 의지하고 있었고, 과제 때문에 곤란할 때나 부활동에 아이디어를 내야 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라든지, 여러 가지 일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참고로 그 관계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자주 바보 캐릭터라고 놀림받고 있는데, 학교 성적은 어땠나요?
공부는 계속 못했고, 교과서를 펴면 바로 잠이 오거든요. 예법 빼고는 거의 다 못했어요. 특히 수학이랑 영어는 엄청나게 못해서, 국어나 사회 같은 문과 과목이 조금은 점수가 나았던 것 같은 느낌이에요.
필요한 “존재”이기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할 거예요
점점 더 빛나고 있는 레나 씨! 앞으로 사쿠라자카46 중에선 어떤 존재가 되고 싶나요?
제가 그룹에 들어가는 게 결정된 첫 쇼룸에서 “존재”라는 말을 색지에 썼었거든요. 그룹에 있어서 필요한 존재이고 싶다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제 안에 있어요. 거기에 더해서 지금은 아름다움을 갖춘 존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저한테 의외로 욕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도 새로운 발견이었고요. 그때까지는 그다지 자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레슨을 거듭할수록 점점 ‘좀 더 이렇게 하고 싶다’라든지 ‘좀 더 이런 식으로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라이브가 끝난 후에 ‘다음엔 저 파트를 이렇게 해보자’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저 이런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많아졌어요. 멤버로서의 활동 이외에도 모델이나 연기 일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모르는 분들에게도 저를 보면 즐겁거나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TBS 방송 “라빗또!”의 레귤러를 경험한 것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을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처음에 “라빗또!”의 목요일 레귤러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기쁜 것보다도 ‘나로 괜찮은 걸까…?’하는 기분이 더 컸어요. “거기 돌면, 사쿠라자카”이외의 방송에는 거의 출연한 적이 없는 내가 생방송이라니, 겁이 많아지고 불안했어요.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기린의 카와시마씨나 야다 아키코 씨를 시작으로, 주변 출연자분들이 매회 도와주셔서요. 제가 어떤 발언을 해도 그걸 받아쳐서 재밌게 해주셔서, 온에어 때마다 ‘감사합니다’하는 마음으로 가득했어요. 로케나 음식 레포트에서는 함께 출연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받이 받았고 매번 많이 배웠어요. 고정 출연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말을 걸어주시거나 하는 기회가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아이돌을 목표로 하고 싶은지 알려주세요.
아이돌이 된 순간부터 계속 사랑받는 사람으로 있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 존재가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면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이상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항상 겸손하고, 자신에게 엄격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해서 항상 성장해갈 수 있는 저로 있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적인 꿈은 있나요?
흠… 뭘까요. 언젠가 가능하다면 결혼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만, 지금은 일이 너무 즐거워서, 아직 전혀 현실적이지 않아요(웃음).
그런 레나 씨의 좌우명은?!
하지도 않고 후회하기보다는 하고 후회하자. 하지도 않고 후회하는 인생은 아깝다고 생각해요. 하지 않을 바에는, 도전했지만 실패하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지 않나요? 이건,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을 본 것을 계기로 생각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이 사진집을 구매해 주신 분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몇 번이나 사진집을 열고 싶어지고, 다 읽었을 때는 행복한 기분이 퍼지는 따뜻한 한 권을 목표로 촬영에 도전했습니다. 이 마음이 여러분에게 닿기를. 그리고 이 사진집이 당신에게 계속 곁에 두고 싶은 책이 되기를. 사랑을 담아♡
레나님은 사쿠라자카에 꼭 필요한 존재예요..❣
앞으로도 원하는 일 많이 하면서 즐겁게 활동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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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끝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필사적이 된다
깊게 호흡하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미국) 산타페의 붉은 암벽 앞에 진홍색 드레스를 입고 섰을 때의 일이다. 약관 25세의 자신이, 태곳적부터 이어진 이 풍경과 고요히 어우러져, 과거와 미래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한 신기한 감각. ‘나는 뭐든 될 수 있다’, ‘아직 어디든 갈 수 있다’ -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 때는 쉬는 시간마다 복도나 계단에서 친구들과 함께 아이돌 춤을 따라 했다. 방과 후에는 배구부 연습으로 기진맥진하면서도 돌아가는 길에는 친구들과 장난치며 포복절도하던 나날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부터는 아침 연습도 생기고, 아침 6시부터 전철을 타고 등교하고 부활동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밤 10시. 그렇게 바쁜 와중에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이 “아이돌”의 존재였다. ‘이걸 극복하면, 좋아하는 아이돌과 만날 수 있다’ 그 마음이 ‘지금’을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다.
대학교에서 보육사가 되기 위한 공부와 배구를 양립하고 있던 그녀에게 바뀌는 계기가 찾아온 것은 2018년이다. ‘멤버와 만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 세미나에 참가했고 그 후 오디션에 참여하게 된 것. 노래도 댄스도 자기 PR도 자신감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그저 좋아하는 그룹에 대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 해 겨울, 그녀는 20세에 (당시) 케야키자카46의 멤버가 되었다.
‘고등학교 부활동은 지금도 자주 꿈에 나와요. “충실하게 보낸 청춘의 날들이었어요”라고 미화하고 있지만, 아마 제가 느끼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던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그도 그럴 게, 아이돌 생활 중에 그때를 넘을 정도로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서… 후후후 (웃음) 저에게 있어 부활동은 “그 나날들을 극복했기 때문에 뭐든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할 정도의 경험이었네요. 그래도 그것도 기한이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 있던 거예요. 그 힘든 연습을 평생 계속할 수는 없죠(웃음). 아이돌로서의 활동도 아마 똑같다고 생각해요. 멤버와 함께 있는 것도 팬분들과의 교류도 전부 즐겁지만 그것도 언젠가 끝이 온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필사적이 돼요. 6년 전, 아이돌이 되었을 때부터 저는 “끝까지 해냈다"라고 생각될 때까지, 최후의 최후까지 열심히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언젠가 졸업할 때, 절대 후회하고 싶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끝”이 있다는 게 제가 아이돌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녀의 말 하는 방식에는 기분 좋은 리듬과 부드러운 멜로디가 있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확실히 ‘가수’의 소리인데, 말하는 내용은 운동선수 느낌. 게다가 그 모습은 성모 같은 자애의 빛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아마 아이돌이 되고 6년에 걸쳐 획득한 밸런스일 것이다. 6년 전에는 아이돌로서의 ‘예술점’을 몸에 익히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고.
‘부활동을 했던 덕분에 어떤 힘든 스케줄이 있어도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었지만, 제 스킬의 부족함이 그룹으로서의 평가에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꽉 막혀오는 느낌이었어요. 스포츠의 경우에는 승패가 있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확실하게 나눠져 있습니다. 그런데 노래나 춤은 제가 “이렇게”라고 믿고 해왔던 것도 어떻게 보일지는 알 수 없어요. 그래서 노래와 춤에 대해서는 항상 필사적이었어요. 그것과 동시에 특히 그룹으로 활동할 때는 저의 한심한 점이 그룹 전체에 영향을 준다거나 팬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자신감이 생기지 않아서, 소극적이 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언제나 마음속에선 “불안하네”라고 느끼고 있었고 중요한 파트를 맡았을 때도 솔직히 기뻐할 수 없어서… 항상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걸로 괜찮은 걸까?” 하고 헤맸어요. 저 스스로도 “귀찮은 애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이 없었어요(쓴웃음). 주변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 했던 것 같아요.
동경하던 그룹에 들어와서, 2기생이라는 존재를 팬분들이 쉽게 받아들여주실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도 했고, 좋아하는 그룹에 2기생이 들어온 것으로 흠이 가게 하지 않으려는 의미에서 필사적이었어요. 좋아하는 만큼, 저에게 부담을 많이 줬던 것 같아요.’
마음의 부정적인 부분을 사람들과 공유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소극적인 마음을 더욱 몰아붙였던 것이 원래 가지고 있던 철저하고 엄격한 성격.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칭찬을 들어도 그것이 자신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납득하지 않는 한, 쉽게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변의 스탭이나 멤버, 팬들에게 칭찬을 듣고 “그렇게 봐주는 사람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기뻤지만, 좀처럼 자신감으로는 이어지지 않아서… 그 부분은 저의 특히 귀찮은 부분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저 스스로 “해냈다!” “최선을 다했다!”라는 실감이 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자신감이 생기지 않아요. 그렇지만 그만큼, 누군가 저를 깎아내려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달까…(웃음).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되는 말을 들어도 제가 "좋다"라고 생각했다면 마음이 아프지 않아요. 저만의 중심이 있고, 그건 흔들리지 않습니다.’
목소리의 톤은 밝지만, 이 이야기를 할 때의 그녀는 어딘가 괴로워 보이는 인상을 줬다. 그중에서도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된 것이 첫 번째 사진집 “첫걸음”이다.
‘사진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저 스스로 “온 힘을 다했다”고 생각한 게 몇 가지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몸 만들기였습니다. 영양학에 기초한 단식과 레코딩 다이어트를 철저히 해서, 노력하는 것에 따라 제 자신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집을 만드는 준비 기간에, 제가 한 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제 의견을 엄청나게 전달했어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면 “저는 이런 쪽이… 좋다고… 할까요~” 같은 느낌으로(웃음). “절대로 싫다는 건 아니었지만, 제 의견은 이래요”라는 것을 제대로 전할 수 있던 건, 제 인생에서 처음이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때까지는 안무를 배울 때나 라이브의 리허설에서 눈치챈 것이 있어도, 2기생이라는 것도 있어서 좀처럼 말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사진집을 계기로 제멋대로는 아니더라도 고집하는 부분을 내보이는 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룹에서도, 제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응원해 주시는 팬분들을 위해서라도 납득한 것을 전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 의견을 제대로 전하는 것도 중요하구나, 하고.’
학생 때, 어머니와 싸울 때마다 들은 말이 있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걸 말해줘’ 옛날부터 내 안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솟아오르면 입을 꾹 다물어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건 아이돌이 되고 나서도 한동안은 변하지 않았다.
‘학생 때는 엄마가 배구에 대한 의견을 낼 때가 많아서, 그럴 때마다 저는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 의견이 정곡을 찌르는 의견이었기 때문에 저는 “알겠다니까!”라고 말했을 뿐, 그 외에는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안에 소용돌이치는 부정적인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에 어찌 됐든 서툴러서, 부모님 외에는 아무하고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은 “생각하고 있는 걸 전부 말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게 좋아”라고 말씀하셨지만, 애초에 제 안의 부정적인 부분을 사람들과 공유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긍정적인 것이나 즐거운 것이라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지만, “지금 당신한테 이런 이유로 화났어요!” 같은 걸 전한다고 해도, 부정적인 감정이 퍼진다는 것만으로 문제 해결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다면 즐거운 대화를 하는 편이 낫다고. 그룹 활동 중에도 위화감을 느꼈다고 전하는 걸로 제 찝찝한 원인을 없앤다기보다는 멤버와 즐거운 이야기를 해서 그 찝찝함을 잊어버리는 게 낫다고. 애초에 사쿠라자카의 멤버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저의 이상함을 알아차려주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위화감 같은 걸 느낄 새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된 것 같아요.’
14년간 계속해왔던 배구가 영향을 주었을까, 멘탈적인 부분에서는 쿨한 면도 있고, 어떤 하나의 감정에 빠져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그녀가 중학생이었을 때, 시 대회에서 우승하고 돌아갔을 때 현관에서 어머니가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축하해’하고 포옹을 해줄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그녀는 기뻐 보이는 어머니를 흘긋 쳐다보고 포옹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그렇게 잘 기억나진 않는데, 제가 “됐다니까!” 같은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엄마는 그게 정말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쓴웃음). “그때의 호노는”이라든가 지금도 얘기하세요. 그래도, 제 성격적으로는 “해냈어~!”라든가 천진난만하게 껴안는 타입은 아니고, 벌써 다음을 보고 있다고 할까…’
새로운 만남에 두근두근. 사람은 변하는구나~하고
퍼스트 사진집으로부터 3년이 지나, 이번 사진집이 탄생했다. 3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정말 많이 변했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무엇을 계기로 바뀌었나 하는 그 “무엇”은 딱 떠오르지 않아서’라고 말하면서, 또 기분 좋은 멜로디에 말을 싣는다.
‘멤버를 시작으로 주변 스탭분들, 팬분들이 저를 천천히 바꿔주신 걸까요… 3년 전에는 앞으로의 일 같은 건 생각할 여유도 없이 어쨌든 “지금”에 필사적이어서,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돌”로서의 활동 이외에는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무대에 서는 것이 전부였거든요. 지금은 그것이, 지금을 마주하면서도 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버라이어티, 잡지, 연기, 사진집 일도 포함해서, 마음속에 “아이돌” 이외의 것도 넣을 수 있는 여백이 생긴 것 같아서, 알찬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에는 새로운 환경이 어렵게 느껴져서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도 잘 하지 못했는데요, 저만의 세계 속에 틀어박혀있는 편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성격이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여백이 생겨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즐겁고 새로운 것과 만날 때 두근두근할 수 있게 되어서, 사람은 변하는구나 하고(웃음). 저에게 자신이 없었을 때는, “다들 대단하네~”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아래를 향하고 있었으니까요.
사진집도, 첫 번째 사진집 때는 처음 혼자서 하는 일이라는 걸 너무 깊게 생각해서, 몸 만드는 것도 한계까지, 죽을 기세로 했어요(웃음). 그래서 그때의 저 다운 표정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촬영이 다가오면서 이 3년간에 제 안에서 생겼던 여백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아무 목표 없이 나아가는 것이 스트레스고,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편이 마음이 편해서, 열심히 하는 걸 그만두거나 멈추는 게 무서운 성격이라서요… 그게 이번에 한해서는 “쉴 수 있을 때는 쉬자!”고 생각을 바꾸고 “덜어내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끝까지 저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뭐 어때" 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것도 이 3년간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변화라는 건 원래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천천히, 서서히 변하는 거라고. 체형관리도, 이 3년간 계속 해왔으니까 “뭐 어때” 하고 생각할 수 있는 타이밍이 있었어요. 혹시 첫 사진집 단계에서 “뭐 어때”의 경지에 올랐다면, 저는 심하게 후회하지 않았을까요(웃음).
결과적으로, 이번 사진집은 즐거우면 배가 아플 정도로 웃고, 멍하게 있을 때는 그냥 렌즈를 계속 쳐다보고 있거나 하는 너무 내추럴할 정도의 제가 있었어요. 퍼스트 사진집 때는 “이렇게 보이고 싶다”는 소망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바로 그대로, 제 모습 그대로 찍혔어요.’
3년간의 변화 중에, 제대로 자기 생각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은 후배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크다. 선배가 많았을 때는 그냥 따라가는 것에만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한 분 한 분씩 졸업을 하고, 저희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자각이 생겨서 그룹을 바라보는 방식도 변해갔어요. 무엇보다 팬들을 섭섭하게 할 수는 없었고, 저희들도 외로워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요. 전부 우리한테 달려있다는 걸 깨달았고, 센터에도 섰기 때문에 우리들이 우물쭈물하고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말하지 못할 거라고.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있고, 그것이 후배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모두가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게 멋지구나, 하고. 존경하는 선배가 졸업하는 것은 슬프고 쓸쓸하지만 확실히 얻는 것도 있었어요. 선후배의 관계가 생긴 것은 그룹에게도 저에게도 크게 성장으로 이어지는 사건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선배들의 졸업 외에도, 케야키자카46에서 사쿠라자카46으로 개명하면서 생긴 자각도 있다.
‘케야키자카에서는 2기생이었지만, 사쿠라자카로서는 1기생. 설마 그룹의 결성에 관련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동경하던 그룹에 들어간 것에 감사함도 컸지만, 부담도 커서 위축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새로운 그룹을 만들게 되어서, “어렵네”라고 느끼면서도 그룹의 이미지도 음악도, 의상도 전부 “지금, 여기”서 만들어지고,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보이는 게 맞을지도 모른 채로, 저희가 믿었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어요. 어쨌든 필사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저에게는 즐거웠어요. 지금은 밝고 긍정적이고, 엄격한 상하관계도 없고, 전원이 동료라는 감각이 사쿠라자카스럽다고 느끼고 있어요. 멤버뿐만 아니라 스탭분들도 포함해서 거리감이 없고, 함께 만들어가는 동료라는 느낌이 정말 기분 좋아요.’
멤버의 대단함이 좀 더 세상에 알려지길 바라는
이 사진집이 발매되기 전날, 그녀는 26살이 된다. 아이돌이 되고 아직 6년이지만, ‘졸업’이라는 두 글자를 의식하고 있는 걸까.
‘아이돌 활동 기간은 유한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생기는 반짝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돌로서 활동하는 이상, 각자 ‘졸업’의 타이밍에 대해 생각하는 게 있을 것 같지만, 저는 사쿠라자카46으로서 아직 하고 싶은 게 더 있어요. 특히 페스티벌에 많이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는데요, 팬분들만 즐길 수 있는 그룹이 아니라 처음 보시는 분들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되고 싶어요. 그건 저희의 과제이기도 해요. 케야키자카 시대부터 페스티벌에는 여러 번 나갔었는데, 작년부터 해외에도 나가게 되었고, 사쿠라자카뿐만 아니라 다른 일본 그룹들도 더욱 해외에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J-POP이라는 거 좋구나”라거나 “사쿠라자카 이렇게 분위기 띄울 수 있구나”라고 알아주시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희들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음악이 좀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왜 그런 큰 꿈을 품게 되었냐고 하면, 그건 제가 사쿠라자카 모두를, 진심으로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에요(수줍은 웃음). 나중에 라이브 영상을 다시 보면서, “다들 어떻게 이렇게 멋있는 거야!! 이 순간의 이 멤버, 다들 제대로 봤을까?”라고 생각하거나 해요. 역시 저 자신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요(쓴웃음). 저는 정말 진심으로 모두를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멤버의 대단함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마음속 깊이 바라고 있고,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 하고 싶어요!’
매우 강한 마음이 매우 강한 목소리를 타고 흐른다. 사쿠라자카에 대한 최상급의 애정이 말속에서 흘러넘친다.
‘게다가 저는 사쿠라자카의 곡을 좋아해요. 음악이라는 게, 노래를 부르면서 처음 생겨나는 감정이 있어요. 혼자서는 모르지만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할 때는 눈앞의 광경과 그 순간의 기분이 연결되어서, “이 가사의 의미는 이런 거였구나” 하고, 그때까지 와닿지 않았던 구절이 마음에 와닿기도 해요. 매번 “이게 라이브구나” “이게 날 것의 리얼한 감정이구나” 하고 살아있다는 실감이 납니다. 그날 모여주신 분들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고, 몇십 번째일지도 모르지만, 각자의 삶 속에서 한순간이라도 같은 감정이 되면서 “이게 있어서 힘낼 수 있어”라고 생각해 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무대 위의 순간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돼요.
아이돌이 된 것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 굉장히 큰 변화였지만, 아이돌이 되고 나서 변화한 것도 많아요. 예를 들어 2년 전에는 채워지지 않았던 도쿄돔이, 지난번 공연에서는 360도로 관객분들의 미소를 볼 수 있었어요. 라이브를 하면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시고 있구나” 하고 팬분들의 사랑의 힘을 엄청 느끼고, 멤버들과도 자주 “Buddies 최고!”라고 말하고, 아직도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라이브에서는 한계까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아이돌로 있고 싶어요. 저희가 살아 있다는 실감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그걸 보고 있는 분들에게도 “살아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게, 저희 라이브의 의의라고 생각해요.’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기대돼!’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하면서, 인생의 다음 목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제일 즐거웠네~” 라고 생각하는 게 중학교 때예요. 부활동도 열심히 했고 엄청 힘들기도 했지만, 돌아가는 길에 친구와 구를 정도로 웃거나(웃음). 그런 별거 아닌 매일이 정말 즐거웠어요. 20대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자연스러운 제 모습 그대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게 혹시 30대는 아닐까 싶고, 아직 뭐든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무적!”이라는 느낌도 들고요.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순수하게 무적의 30대를 목표해나가고 싶어요(웃음)’
호노짱이 사쿠라자카를 좋아하는 만큼 우리도 호노짱을 좋아해!
호노짱이 원하는 만큼 행복하게 아이돌 생활 즐겨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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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짱 너무 귀여워.. ₍ᐢ.‸.⑅ᐢ₎↝
보는 내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힐링영상
개인적으로 제일 귀여웠던 토마토 카오하메에서 찍은 사진들🍅
5기 화이팅 ( •̀ᄇ• ́)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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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일을 하면서 '그것뿐만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세이미야 레이
전에는 『노기자카 스킷츠』의 콩트를 할 때 망설임이 있었지만, 지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쨌든 있는 힘껏
- 세이미야상은 노기자카46 가입 전에 연기나 무대에 관심이 있었나요?
세이미야 부타이를 보러 간 적은 없었지만 드라마나 영화는 계속 봤어요. 히로세 스즈상의 연기를 엄청 좋아해서 여배우에 대한 동경은 있었습니다.
- 본인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나요?
세이미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고, 그 정도 였던 것 같아요.
- 그렇지만 노기자카46의 일원이 되고 연기를 할 기회도 얻은 거잖아요.
세이미야 노기자카46에 들어왔을 때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것보다도 '노기자카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나가는구나!'라거나 '선배님들이랑 만날 수 있어!'같은 생각이 더 커서, 제가 외부 일을 한다는 건 전혀 머리 속에 없었어요. 최근이 되어서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4기생으로서 첫 부타이가 『3인의 프린시펄』(19년 4월)이었죠.
세이미야 그랬죠. 저는 실전보다도 연습이 더 힘들었다고 생각했어요. 연습장소에 1개월간 갇혀서, 일단 다들 대사를 못 외웠었거든요. '읽기는 이렇게 합니다'라든지, 먼저 외우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반복해서 하루에 몇 시간을 계속 연기했어서, 정말 힘들었어요. 예를 들어 10페이지 분량 정도를 외우라는 지시를 받으면 지금이라면 외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그 때는 그것조차 못 했어서요. 세 가지 역의 모든 대사를 외운다는 건 엄청 허들이 높거든요. 아, 역시 지금이라도 무리네요(웃음). 제 느낌으로는 그걸 연습장소에서 테스트 받는 느낌이었어요. 매일 초조했어요.
- 한 역할의 대사를 외우는 것이라도 역시 전후 흐름도 있으니까, 세 역할 전부 외우지 않으면 안 됐기도 하겠네요.
세이미야 한 페이지에 꽉 차있는 글씨를 보고, '우왓, 못 외워...'라고 점점 초조했을 뿐이었어요(웃음).
- 게다가 그냥 대사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의 동작도 더해졌죠.
세이미야 그러니까요! 저희는 전혀 연기를 못 해서 일단은 형태라도 제대로 보일 수 있게 사람에 따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동작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동작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 대사에는 감정의 움직임도 들어가고요.
세이미야 그 때는 감정은 전혀 생각하지 못해서, 그저 큰 목소리로 대본을 읽을 뿐이었어요.
- 연습장과 무대는 또 큰 차이가 있는데요. 무대에서는 관객도 있고 그쪽을 향해서 전해야 하고요. 실제로 공연기간엔 어땠나요?
세이미야 별로 연습이랑 차이가 없었어요(쓴웃음). 그래도 별로 혼란스러운 건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이런 곳에서 연기를 할 수 있다니, 기대돼!'라는 마음이 컸을지도 모르겠네요. 관객분들에 대해서도... 저희들은 심사되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래도, 돌이켜보면 저는 관객을 보고 있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네요.
- 그렇게까지 의식하지 못했나요?
세이미야 네, 관객보다도 제 대사에 열심이었어서요. 무대에서 보면 객석쪽에 조명이 3개 있었는데요, 그게 시선을 보냈던 표지였어요. 그래서 그 경치밖에 기억하지 못하거든요. '그러고 보니까, 사람 있었나?' 정도의 감각이요.
- 꽤 빠져 있었네요(웃음).
세이미야 그렇긴 하네요(웃음).
- 그렇다면, 긴장은 안 했나요?
세이미야 그래도 테스트받고 있다는 감각이 없어지지 않아서요. 보여지고 있다는 긴장감은 전혀 없었지만 '틀리지 않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긴장감은 항상 있었어요. 결국 저, 대사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었네요(웃음). 열심히 했지만 왠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붕 떠서요. 저, 밤 10시에 자는 사람이었는데도 매일 2시정도까지 안 자고 노력했는데, 전혀 외우지 못 해서, 주변에 폐를 많이 끼쳤었어요. 가끔 뽑히지 않아서 안심하는 날도 있었어요. '아, 다행이다. 오늘은 나 못 외웠으니까'하고요.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가면 상처 받을 수 있기도 하고요.
- 그러면 아직 무대가 즐겁기 전 단계였었네요.
세이미야 '틀리지 않고 할 수 있을까'라고, 학교의 연장선 정도의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대기실 쪽이 더 즐거웠어요. 어떤 사시이레를 받았다든지, 누구누구가 보러 와줬다든지. 왜 다른 건 기억이 안 나지? 계속 대본을 읽고 있어서,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네요.
'어른'의 대열에
-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무대에 임하는 건 이번 『3학년B반 미나가와 선생님 ~2.5교시째~』이 처음이 되겠네요.
세이미야 네. 이번엔 대본을 갖고 있지 않아도 연습장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생각했어요. 이렇게까지 하는 건 처음이에요(웃음).
- 처음 출연이 결정됐을 때, 솔직히 어떻게 생각했었나요?
세이미야 '에, 나도 부타이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같은 4기생에서도 연기를 잘 하는 멤버가 부타이에 선발되거나 해서 저한테 그런 이미지가 있었나 하고 놀랐어요. 기대되는 마음이 컸을까요. 개인 일을 받게 된 것도 기뻤고요.
- 세이미야상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네요. 첫 대면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세이미야 깃이 달린 좀 뻣뻣한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요, 면접 보듯이 긴장했었어요.
- 대본을 갖고 가지 않고도 대사를 말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도 그렇지만, 이번 부타이를 마주하는 방식은 『프린시펄』 때와는 많이 다르네요.
세이미야 전혀 달라요. 그도 그럴게 주변에는 프로 분들밖에 없어서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았고요. 제 역할을 완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전혀 못 해요(쓴웃음). 지금(취재 시점)은 마무리 단계인데요, 저번에 리허설을 했는데 점점 더 못 하게 되는 제 자신을 깨달았는데, 다른 분들은 점점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요구되는 레벨이 점점 높아지잖아요. 거기서 점점 차이가 벌어져서 '앗!'하고 초조해하는 단계입니다.
- 그런 고민을 누군가에게 상담하거나 하나요?
세이미야 전혀 안 해요. 스스로 뭐가 안 되는걸까 생각해보고 상담하지 않으면 안되니까요. 그렇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결국 뭘 모르는지 모르니까, 모르는 상태 그대로네요(웃음). 그래도 저, 알기 쉬운 것 같아요. 저도 무의식적으로 그랬는데 책상에서 머리를 싸매고 대본을 읽고 있던 거예요(웃음). 그걸 본 연출가 호소카와 (토오루) 상이 '괜찮아? 어떤 부분을 모르겠어?'하고 말을 걸어 주셔서, 그래서 어제 '이 씬이나 이 씬이, 전혀 감정을 움직이지 못하거든요.'하고 전했더니 역시 이야기는 이어져 있으니까 그 전 씬을 먼저 읽고 '여기의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라든지 '그러니까 여기서는 이렇게 보여주고 싶다'라고 굉장히 친절하게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조금은 자신감을 회복해서 전보다는 앞이 보이게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 부타이의 세례를 거기서 받았다고요.
세이미야 네. '코미디니까 기를 쓰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오토나기획(부타이 기획사)의 모든 분들이 말해주셨지만, 그렇게 말해도 다들 대단한 분들 뿐이니까요. 발목을 붙잡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노력하고 있어요.
- 6월 17일이 첫날인데요, 그 때는 또 마음가짐의 변화도 있을 것 같고요. 막상 무대에 서서 관객을 앞에 두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을 것 같아요.
세이미야 저, 실전에 강한 타입이기도 하고요(웃음). 이번에도 연습보다 실전에서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에는 『프린시펄』과 다르게 마이크를 안 차고 생 목소리로 하기 때문에 그 부분도 지금 고민하고 있어요. 미나가와 (사루토키) 상은, 목소리가 엄청 크세요(웃음). 계속 소리치는데도 절대 줄어들지 않아서 정말 대단하시죠.
- 저도 이전에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요, 평소에는 목소리가 작은데 막상 무대에 서면 정말 목소리가 크시죠.
세이미야 평소에는 상냥하게 이야기하셔서, 갭이 대단하네요. 오토나기획 분들은 모두 갭이 있네요. 무라스기 (세미노스케) 상만은 갭이 거의 없지만요(웃음). 계속 상냥한 느낌이셔서 배역으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 처음으로 외부 분들과 같이 부타이를 한 경험이 다음에 그룹에 돌아가면 어떻게 반영될지 궁금하네요.
세이미야 지금은 아직 연습하는 단계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뭐랄까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은(웃음). 지금은 두 가지 일을 같이 하고 있으니까 그런 느낌이지만, 완전히 노기자카46의 활동만 하게 되면 다시 돌아가버릴지도 모르겠네요(웃음).
- 그래도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들이 앞으로 무의식적으로 나올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의 세이미야 상에게 있어서는 꼭 플러스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세이미야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 이전의 『노기자카 스킷츠』의 콩트를 할 때는 망설이는 게 있었는데요, 지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성장이네요. 부타이는 점점 좋아하게 될 것 같나요?
세이미야 저 깊게 하면 할수록 자신이 없어지는 타입이거든요. 가볍게 하면 못 하는 걸 깨닫지 못 하는 단계니까, 기합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하면 할수록 '아, 안되겠다'하고. 뭐든지 그래버려요.
- 완벽을 추구하게 되어버리는 건가요?
세이미야 분석 같은 걸 하게 되어버리네요. 깊게 추구하면 할수록 생각을 안 할 수 없잖아요. 완벽주의는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이것저것 하고 싶어져요.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하다가 궁지에 몰리기도 할 것 같은데요.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사람은 자고 나면 어떻게든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 그렇군요(웃음).
세이미야 최근에는 연습이 6시, 7시 쯤에 끝나면 집에 돌아가서 1시간 정도만에 잘 준비를 하고 자는 생활이 제일 이상(理想)인데요. 여러 일이 끝나고 연습장에 가면 자주 아라카와 (료료) 상이 걱정하시는데, '8시에 자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더니 '그럼 괜찮으려나(웃음)'하고 안심하셨어요. 지금까지는 밤에 해야 할 일들을 쌓아뒀지만 그걸 아침에 하게 하고 있어요. 8시에 자고, 5시에 일어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게 더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웃음).
- 건강하네요. 부타이는 7월 4일까지 이어지는 장정입니다만, 일단 이 부타이를 무사히 마쳐서 자신감을 얻고, 부타이에 더 관심을 가지면 베스트겠네요.
세이미야 그렇네요. 노기자카46으로서도 여러 일을 경험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외부 일을 하게 되면서 '그것 뿐만이 아니구나'라는 걸 알게 됐고, 지금까지는 눈 앞에 있는 것들에만 열심이었지만, 이런 것도 해보고 싶다든지 그 뒤의 것들을 생각 할 수 있게 된 게 큽니다.
[PROFILE] 세이미야 레이 = 2003년8월1일생, 사이타마현 출신. 그녀의 미소를 보면 빠짐없이 기쁨에 휩싸이는, 순수한 엔터테이너. 애칭은 '레이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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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이 아야메
한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파고드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부타이와 연기
- 츠츠이상은 노기자카46에 들어오기 전에 부타이나 연기 일에 관심이 있었나요?
츠츠이 평범하게 시청자로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정도였어요. 여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습니다.
- 그러다가 노기자카46에 들어가서, 『3인의 프린시펄』(19년 4월)에서 처음으로 연기를 접하게 된거네요.
츠츠이 맞아요. 『프린시펄』 때는 대본을 통으로 외우는 데에만 필사적이었어서 엄청 힘들었어요. 연습하고 집에 돌아가서도 잘 때까지 계속 대사를 외웠지만, 그렇게 해도 다음날에 완벽하게 할 수가 없어서요. 대사 외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요.
- 대사는 어떻게 외웠나요?
츠츠이 그저 계속 읽었습니다.
- 몇 번이나 읽어서 어쨌든 머리에 남게 하는 거군요. 당시에 연출가나 스태프에게 조언을 구했다던가?
츠츠이 구했어요. 다들 처음이었어서, 어쨌든 모르는 건 연출가분이나 연출가분의 조수분들한테 물어보고, 다같이 협력해서 겨우 본방을 맞이할 수 있는 느낌이었어요.
- 본방은 연습과 달리 관객이 있어서 분위기가 전혀 다르죠. 첫 공연이 시작하고 마음의 변화가 있었나요?
츠츠이 그 때는 기쁜 마음이 더 컸어서요. 관객분들이 눈 앞에서 봐주시는 게 정말 기뻤어요. 물론 긴장도 했지만, 관객이 있어서 마음이 움츠러든다든가 그런 것 없이, 꽤 느긋하게 할 수 있었어요.
- 그렇군요. 『프린시펄』은 1막에서 뽑히지 않으면 2막에서 연기를 할 수 있는, 특수한 내용이었죠. 거기에서의 모티베이션은 어떻게 유지했나요?
츠츠이 처음 2회 정도는 뽑히지 않아서 조금 기죽거나 하기도 했는데요, 그 후로는 그렇게 기죽지 않았어요. (프린시펄은) 매일 계속되니까, '내일은 어떻게 할까?'하고 다음날 것을 생각하려고 했어요.
- 그렇군요. 그럼 2막에 나갈 수 있었을 땐 어땠나요? 연기하는 걸 즐기고 있었나요?
츠츠이 네. 그 시기에는 대사도 완전히 머릿속에 다 있을 때여서, 그 걱정도 없었고요. '아, 드디어 2막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즐길 수 있었어요.
- 확실히, 『프린시펄』에서 츠츠이상은 대사를 잊어버리거나 그런 문제가 없었던 기억이 나요.
츠츠이 네네. 없었어요.
- (『프린시펄』이) 특수한 부타이긴 했지만, 그런 무대 위에서 자신이 아닌 인물을 연기해 보고, '이걸 좀 더 하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했나요?
츠츠이 노기자카46에 들어오고 나서 연기는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지만, 그게 부타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부타이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놀랐습니다.
매일이 자극적
- 6월 4일부터 시작하는 『눈시울을 눌렀다』는요. 지금까지 경험했던 『프린시펄』과도, 그야말로 영상 연기와도 다르고요. 이 무대에서의 츠츠이상은 주연이기도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많이 나오기도 하고, 대사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양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츠츠이 그래서 처음엔 불안이 9할이었어요. 연습이 시작하기 전까지 한 달 정도 있었는데요, 그 기간은 계속 불안해서 뭘 해도 머리 한 구석에 계속 부타이 생각이 있었어요.
- 대본 외우는 건 이번엔 어땠나요?
츠츠이 이번엔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어요. 역시 『프린시펄』을 경험했었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완전 괜찮았어요.
- 처음의 가혹한 경험이 살아있었군요. 연습 시작 전에 상견례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때 인상에 남았던 건?
츠츠이 다들 낯을 가리시는건지 모르겠지만, 처음엔 아무도 말을 안 하고 조용한 느낌이었어요(웃음). '괜찮은걸까?'하고 불안했지만 몇 주가 지나고 조금씩 거리가 줄어들어서, 지금은 매일매일 왁자지껄해요(웃음).
- 거리가 좁혀진 계기가 뭔가 있었나요?
츠츠이 연습 첫 날에 가정교사 역의 하시즈메 (이유리) 상에게 '불안하네요'라고 용기를 내서 상담했더니 이것저것 대답해주셨어요. 그때부터 하시즈메상과 많이 얘기하게 돼서, 조금씩 주변 사람들과도 마음을 터놓게 되고 대화도 많아졌어요.
- 그랬군요. (그룹) 밖의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요, 역시 그룹 때와는 전혀 달랐나요?
츠츠이 전혀 달라요(웃음). '이렇게 대사를 말하는 방법도 있구나'라든지 깨닫게 된 것도 많고요. 처음 대본 읽기를 했을 때 어떤 장면에서의 각자의 마음을 공유하기 위해서 의견을 나눴었는데 그 때 제 안에는 없었던 의견이 확확 나와서 '이런 생각도 있구나'하고 계속 압도당했었어요.
- 그게 자극이 되어서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생각하셨나요? 아니면 조바심이 되었나요?
츠츠이 음... 둘 다요!(웃음) 주위 분들이 정말 대단하시니까 '나, 여기 있어도 되는 건가?'하고 생각해버렸어요. 그래도 이왕 하게 된 이상 확실히 해내고 싶어서, 받은 자극을 집으로 가져가서 혼자서 여러가지로 생각하고 다음날 연습에 임했어요.
- 그럼 처음에 본인 안에 있던 역할의 이미지나 연기의 계획이 주변의 자극으로 서서히 변해가거나 하기도 했나요?
츠츠이 네. '이 씬은 이렇게 되는 걸까? 하고 혼자 떠올려도 상대방과 연기할 땐 전혀 다른 방향에서 오는 것도 있어서, 저도 거기에 맞춰서 가는 느낌으로 했어요.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씬이 된 것도 꽤 많았어요.
- 점점 바뀌어 가는 건 역시 즐거운 일입니까?
츠츠이 그렇네요. 특히 몇 주 정도 지나고 나서는 더 재밌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 그 감각은 『프린시펄』 때는 맛본 적 없는 것이었나요?
츠츠이 네. 정말 대사를 외우는 것 뿐이어서, '이 장면에서의 마음을 탐색한다' 같은 것도 별로 못 했고요. 한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파고드는 것 자체가 처음이어서, 뭔가... '우와!' 하게 됐어요(웃음).
- 꽤 신선한 느낌이네요. 무대 위라면 보는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게 움직임도 어느 정도 크게 하는데요, 거기에 관해서는요?
츠츠이 연출가 지츠나리 사토루상이 '평범한 가족의, 평소에도 있을 법한 이야기니까 그렇게 움직임은 과하게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하셔서요. 그래서 그 부분은 의외로 내츄럴하게 하고 있어요.
- 발성에 관한 건 어땠나요?
츠츠이 아아, 소리는...(쓴웃음) 원래부터 작아서, 연습에서도 '좀 더 소리를 크게 내!'라고 몇번이고 들었어요. 그래도 처음에 비해서 조금은...(웃음). 그리고 발성이나 발음은 부타이 연습에 가기 전에 꼭 집에서도 연습하고 있습니다.
하면 즐겁지만, 하기 전의 불안이 아직은 너무 무서워서요.
그래도, 연기는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봤던 부타이
- 그 부분도 실전을 거듭하면서 또 바뀌어갔겠네요. 이번에 함께 연기한 분들 중에, 특히 이 사람의 연기는 대단하다고 생각한 분이 있나요?
츠츠이 모두 대단하셨지만, 특히 아버지 역의 야마나카 (타카시)상이 대단하셔서요. 아버지와의 씬이 몇 개 있었는데 매번 리허설에선 다르게 해주셨어요. 야마나카상의 연기에 따라 제 기분도 전혀 달랐고 대사를 말하는 방식도 달라졌고요. 그 때는 역할에 제대로 몰입한걸까, 하고 느껴서 즐거운 순간이었네요.
- 부타이는 그런 재미도 있지요. 익숙해지면 '여기는 자유롭게 하는걸까?'라든지. 이 1개월 짧은 기간 동안, 츠츠이상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나요?
츠츠이 할 수 있었을까요?(웃음) 어떨까요. 다른 분들이 하시면, 저도 할지도 모르겠네요.(웃음)
- 그걸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확실히 성장한 것이겠죠. 이번 한 달의 경험을 거쳐서 노기자카46으로 돌아온 츠츠이상은 어떻게 성장하고 있을까요?
츠츠이 연습이 시작하기 전에는 정말 불안해서 집에 혼자 있으면 눈물이 날 정도였는데요. 그게 지금은 즐거워져서 이것도 굉장히 큰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연습과 실전을 합친 2개월이 끝났을 땐, 예전의 저와는 절대로 달라진 모습이면 좋겠습니다!
- 이 취재 시점에는 공연까지 앞으로 며칠 남지 않았는데요, 솔직히 지금은 어떤 심경이신가요?
츠츠이 지금은 며칠 후가 공연이라는 실감이 잘 안 나지만, 관객분들 앞에 서는 것 자체가 한동안 없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관객분들이 있는 상태를 앞두면 엄청 긴장되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조금 무서워요.
- 그러고 보면 작년 2월 버스라 (『8th YEAR BIRTHDAY LIVE』) 이후로 처음이네요.
츠츠이 네. 그래서 더 기대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매일 열심히 하고 싶어요.
- 센슈락(마지막 공연) 때는 쓸쓸해질지도 모르겠네요.
츠츠이 아니, 벌써 그래요(웃음). 끝이 온다고 생각하면 정말 쓸쓸해져요.
- 그렇군요(웃음). 연습 시작 전과 비교해서 지금은 마음을 다해서 '부타이 합니다!' 같은 느낌이 됐나요?
츠츠이 그렇네요...... 처음과 비교하면 형체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제 공연에서 지금까지 했던 것들 전부를 터뜨릴 뿐, 이라는 느낌이에요.
- 그럼 솔직히, 부타이가 즐겁나요?
츠츠이 네! 우후훗.
- 더 하고 싶나요?
츠츠이 (가만히 있는다)
- (웃음)
츠츠이 하면 즐겁지만요, 하기 전의 불안감이 아직 너무 무서워서요. 그래도 연기는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참고로 다른 멤버, 선배의 부타이는 보러 가거나 하나요?
츠츠이 네. 인생에서 처음으로 보러 갔던 부타이가, 작년에 졸업한 이노우에 사유리상의 부타이였어요. 정말 재미있어서 '부타이라는 거 보러 가면 이렇게 재밌는 거구나!' 라고 처음으로 생각했었어요.
- 츠츠이상이 『눈시울을 눌렀다』 를 끝까지 해내면, 다음엔 4기생이나 미래의 후배들이 똑같이 느낄지도 모르겠네요.
츠츠이 에헤헤.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네요. 그런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원문
![](https://blog.kakaocdn.net/dn/cgzeyJ/btq9fE9Ymw7/3fLkOtAp94o7pCvLTW3Yo0/im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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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츠츠이 아야메 = 2004년6월8일생, 아이치현 출신. '청춘의 천재'임에 틀림 없는 세라복으로 첫 무대를 프레쉬하게 물들인 '교복의 천재'. 애칭은 '아야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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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TURE Sucheese 12문 12답 - 오구마 츠구미 번역
OVERTURE Sucheese 12문 12답 - 오구마 츠구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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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B48그룹 최강의 어린 유닛 Sucheese를 더 알고 싶어 12문12답
이어서, NGT48 오구마 츠구미의 12문 12답.
▽프로필
오구마 츠구미. 2002년 12월 15일생, 니가타현 출신. 닉네임은 '츠구밍'. 2015년 8월, NGT48 1기 멤버로 첫 선을 보임. 10월, AKB48그룹의 어린 유닛 '무시카고'에 선발됨. 2016년 정규 멤버로 승격. 2017년 데뷔 싱글 '청춘시계'의 표제곡 선발 멤버로 선발됨.
(1)아이돌이 되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사실은 아버지가 모르는 사이에 마음대로 NGT48의 오디션에 응모해서, 신기하게 그걸 계기로 지금 이렇게 여기에 있습니다!
(2)동경하는 선배는?
초기부터 NGT48을 많이 지탱해주신, 리에 씨에게 배운 것이 많아서... 졸업하셨지만 키타하라 리에 씨를 동경합니다.
(3)AKB48그룹에서 좋아하는 곡은?
많이 있지만, '여자친구가 될 수 있나요?', '원거리 포스터', '계속 계속' (AKB48) 같은 왕도 아이돌 노래를 정말 좋아합니다!
(4)아이돌이 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많은 아이돌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저를 찾아주시고 알아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 응원해주시는 분들끼리 친해지거나, 무려 그 응원해주시는 분들끼리 결혼하거나,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라도, 여러 루트의 코멘트로 많은 메시지를 주시거나, 여러 형태로 응원해주시는 분들과 연결될 수 있거나 만남을 느낄 때, 아이돌이 돼서 좋았다고 새삼 느낍니다.
(5)Sucheese의 유닛 멤버로 선발되었을 때의 느낌은?
'Sucheese의 멤버로 선발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매니저 분이 LINE으로 알려주셔서 알게 되었는데, 처음에 봤을 때는 너무 놀라서 한참동안 그 화면을 보고 굳어 있었다가, 꽤 시간이 지나고 서서히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6)Sucheese로 커버해보고 싶은 곡은?
아까랑 똑같은 대답이 되어버리지만 '원거리 포스터', '여자친구가 될 수 있나요?', '계속 계속' 같은 왕도 아이돌 노래를 Sucheese 멤버들과 많이 하고 싶어요!
(7)본인은 Sucheese에서 어떤 캐릭터, 어떤 담당?
지켜보고 있는 할머니 담당... (웃음)? Sucheese의 멤버 전원이 너무 좋아서 이제 팬 시선이에요 (웃음).
(8)NGT48에서 어떤 캐릭터, 어떤 담당?
처음엔 1기생에서 최연소였는데, 지금은 드래프트생과 2기생도 들어와서 최연소도 아니어서 지금은 뭐랄까...? 딱 중간 관리직이에요!
(9)지금 빠져 있는 건?
・음악을 듣는 걸 정말 좋아해서 여러 밴드 음악을 잘 듣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특히 Official히게단(髭男)dism에 엄청 빠져있어요. 작년 가을 쯤에 알게 돼서 계속 엄청 빠져있는 히게단의 음악이 너무 멋져서 더 빨리 알고 싶었어!라고 엄청 생각합니다. 이번에 니가타의 매년 있는 음악 페스에 출연이 결정되어서, 정말로 보러 가고 싶어요!
・친구와 니가타의 카페를 발견하고, 찾아서, 가는 니가타 카페 순례에 빠져있습니다. 귀여운 분위기의 카페나 인스타 감성 카페가 정말 좋아서, 친구와 찾아다니는 중입니다. 이제는 꽤 니가타에 있는 카페에 다 간 것 같아요. 니가타에는 멋진 카페가 많으니까 여러분에게 많이 추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모 동영상 사이트에서 추천으로 뜬 스트리트 피아노라는 걸 알게 되어서, 스트리트 피아노 동영상을 보는 데 빠져 있습니다. 역 등에 피아노가 설치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칠 수 있는 건데요, 피아노가 설치된 장소를 가 본 적이 없어서, 언젠가 그 스트리트 피아노 장소와 만나고 싶습니다!
(10)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은지?
제가 노후에 어떤 모습으로 느긋하게 살고 있을까~를 미래로 보러 가고 싶어요(웃음)!
(11)최근 가장 웃었던 일은?
전에 친구와 노래방에 갔을 때, 나이 확인을 위해서 학생증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점원분에게 보여줘야지, 했는데 왜인지 급해져서, 계산할 때 내는 노래방 실내 10%할인권을 슥 냈을 때, 너무 부끄러워서 친구와 웃어버렸습니다(웃음).
(12)이번 여름에 하고 싶은 건?
전에 Sucheese로 라이브를 했을 때 정말 즐거웠어서 또 Sucheese로 무언가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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