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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야 레나 1st 사진집 <笑顔のグ-、チョキ、パ-> (웃는 얼굴의 묵찌빠)

 

레나아 스페셜 인터뷰~

 

진심 어린 미소를 잔뜩 담은 소중한 한 권이 되었습니다

 

촬영 마지막 날, 레나 씨가 ‘인생의 보물이 될 수 있는 한 권으로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 1st 사진집 ‘미소의 묵찌빠’가 드디어 발매되었습니다! 완성된 지금의 기분을 알려주세요.

 

사진의 베리에이션이 정말 풍부해서 보면서 질리지 않는 한 권이 되어서 기뻐요. ‘토끼 귀를 써보고 싶다’라든지, 제가 해보고 싶던 것도 넣을 수 있어서 대만족인데요… 사주시는 분들이 계실까요…? 그것만큼은 조금 걱정이에요. 그래도 이 사진집을 계기로 좀 더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진집을 발매한다는 것은 언제 알았습니까?

 

사쿠라자카46의 라이브가 끝나고 나서 스탭분이 ‘할 얘기가 있으니까 잠깐 와주세요’라고 부르셨어요. 거기서 ‘사진집을 발매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전달받았는데요. 너무 생각지도 못해서 처음엔 ‘정말 저인가요?’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귀여운 여자아이의 사진집을 보는 걸 좋아해서 선배님의 사진집을 산 적도 있지만, 제가 사진집을 내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해서 정말 놀랐어요. 기쁜 것보다도 ‘설마 내가…’라는 기분이 컸네요.

 

알게 된 가까운 사람들의 반응을 알려주세요

 

가장 먼저 보고한 건 어머니였어요. 좋아하시긴 했지만 그 직후에 바로 ‘괜찮은 거야?’라고 걱정하시기도 했네요(웃음). 그 후에 아버지와 오빠에게도 보고했는데 두 명 모두 ‘에, 레나가?!’라며 어쨌든 놀랐어요. 멤버들은 모두 ‘수영복 기대돼!’라고 그 얘기만 해서(웃음). (와타나베) 리사 씨나 마츠리짱 (마츠다 리나), (야마사키) 텐짱한테 특히 놀림받았던 것 같아요. (오오누마) 아키호와 (마스모토) 키라의 2대 대 불가사의 콤비는 ‘열 권 살게’라고 얼렁뚱땅 얘기했어요. 그렇게 말했으니까, 꼭 사줘야 돼♡

 

사진집 촬영을 위해 준비했던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몸을 열심히 만들었어요. 여성스럽고 유연한 바디 라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서, 촬영 3주 전부터는 헬스장에 다니면서 트레이닝을 시작했어요. 살찌는 것도 그렇지만 너무 마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 딱 좋은 찾는 게 어려웠어요. 트레이닝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식생활도 조절했어요. 정말 좋아해서 매일 먹던 초콜릿은 칼로리도 지방질도 높기 때문에 참기로 했어요. 일하면서 한입만 먹은 적도 있는데, 그 외에는 (초콜릿과) 3주간 헤어지는 게 처음이어서 정말 괴로웠어요… 그래도 먹고 싶어지면 ‘지금을 극복하면 로케 장소의 이시가키 섬이나 나가사키에서 무조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분발했습니다. 집에서나 일할 때 비는 시간에는 저 나름대로 포즈도 연구했어요. 선배님의 사진집이나 잡지를 많이 보면서 귀엽다고 생각한 포즈를 저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분명 어색했겠지만요… 저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촬영할 때의 추억을 알려주세요

 

제가 도쿄 출신이어서 도쿄에서도 촬영을 했고, 지방 로케에서는 이시가키 섬과 나가사키에서 촬영을 했는데요, 다 전부 즐거워서 정말 계속 웃었어요. 날아갈 듯한 강풍 속에서 일본 서쪽 끝에 갔던 것도 귀중한 체험이었고, 해변에서 탔던 말도 귀여웠어요♡ 이시가키 섬에서 촬영할 때는 빵이나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요, 다 맛있어서 행복했어요. 나가사키의 호텔에서 먹었던 부야베스 짬뽕과 부르기뇽(이름이 이게 맞을까요?)도 일품. 나가사키 명물인 카라스미(염장한 숭어알)는 다음날 부을까봐 걱정돼서 꾹 참았던 건 조금 아쉬움이 남네요. 오키나와의 슈퍼에서는 지마미 두부를 샀는데요, 너무 맛있어서 푹 빠져버렸어요. 촬영 마지막 날, 스탠다드 푸들을 만났던 것도 좋은 추억…. 헤아리자면 끝이 없네요. 촬영 기간 중에는 거의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촬영을 했지만 피곤하거나 졸린 것보다는 즐거운 기분이 더 커서, 힘들었던 기억이 없습니다(웃음).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점점 찍히는 게 즐거워져서 종반에는 ‘아, 벌써 끝나는구나’하고 슬퍼졌어요.

 

처음으로 수영복이나 란제리에도 도전했는데요, 긴장했나요?

 

의상 피팅 때는 부끄러웠는데요, 수영복을 입고 눈앞에 해변이 있으니까 ‘와~ 바다다~♡’하고 텐션이 올라서 부끄러운 마음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어요. 그건 저 스스로도 놀랐어요. 란제리 사진도 스탭분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셔서, 많이 웃고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의상에 대한 요청사항도 말하고 ‘이런 수영복이나 란제리를 입어보고 싶어요’라고 전했더니 그 취향을 반영해 주셔서 매우 기뻤습니다.

 

사진집 중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컷을 알려주세요.

 

모든 장면을 다 정말 좋아하는데, 하우스텐보스의 튤립 밭에서 촬영했던 핑크 드레스 컷은 특히 마음에 들어요. 이 드레스는 피팅 때부터 너무 귀여워서, 바로 결정했던 옷이에요. 그리고 역시 토끼 씨♡ 스타일리스트분한테도 ‘토끼짱이 되고 싶다’고 전달했더니 토끼 귀와 부드러운 옷을 준비해 주셨어요. 꿈을 이룰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여기에 수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깅엄체크의 비키니 장면에서 은 대야 안에 웅크리고 앉았어요. 수영복을 입고 대야에 들어가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기도 하고, 앞으로도 평생 없을 것 같아서, 최고의 추억(웃음). 스탭분들과 모두 같이 보면서 몇 번이나 웃었어요. 뭔가 기회가 있다면 여러분들께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사진집 촬영 중에 모래사장에서 자연스럽게 ♡를 그리고 있었네요(웃음)

 

아하하, 그렸습니다♡(웃음)

 

그룹에서도 완전히 부릿코 캐릭터로 정착했는데요, 레나 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괴롭혀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룹에 막 들어갔을 때는 ‘뭐라도 좋으니 캐릭터를 만들어야만!’하고 초조해하던 시기도 있었는데요, 정신 차려 보니 부릿코 캐릭터가 되어있어서. 저한테는 조금 예상 외였지만, 멤버들이 장난으로 부릿코를 하고 있는 저를 따라 해주는 일도 많아져서, 그걸 보는 게 즐거워요.

 

“레나아”라는 별명도 정착되었는데요. 마음에 드나요?

 

처음에는 “레나-”라고 불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소코사쿠(거기 돌면, 사쿠라자카?)”에서 하라이치 사와베 씨가 저의 그 발언을 잘못 들었던 것을 계기로 “레나아”가 조금 이상한 억양으로 정착되었을 때 ‘정정할까’라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이름만 부르는 것보다 허들이 낮아지고 선배님들도 친근하게 불러주셔서, 다행이에요♡

 

 

가족들이 등을 밀어준 것이 아이돌이 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연수생부터 시작해, 3rd 싱글 ‘오월비여’에서는 사쿠라에이트로 대발탁. 사쿠라자카46에서의 활동도 매우 충실하네요!

 

덕분에요, 네. 사쿠라에이트는 많은 곡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게 가장 기뻤어요. 녹음도 MV 촬영도, 조금 서투른 안무 외우기도. 다 같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겁고, 정말 좋아요. 센터가 되고 싶다든가 포지션에 대한 고집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물론 전력을 다해 달려나가고 싶고,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면 위를 목표로 하고 싶다는 것은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주어진 것 이상의 노력을 발휘하는 것이 매일 저 자신에게 부여하고 있는 목표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돌이 되는 게 꿈이었나요?

 

그게, 그런 건 아니에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이나 ‘키라링☆레볼루션’ 등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을 자주 불렀던 기억은 있어요. 처음 사주셨던 CD도 분명히 ‘키라링☆레볼루션’ 관련이었던 것 같은데, 가사지를 보면서 제대로 연습하거나 했지만 당시,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유치원에 다녔을 시절부터 계속 보육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만 꿨어요. 중학교 수험을 봤는데 그때도 보육교사를 목표하기 좋을 것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 일관 학교를 선택했고, 대학교도 보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유치원을 다녔을 때 담임선생님이 너무 좋았어요. 항상 웃는 얼굴로 저희와 같은 시선이 되어서 함께 놀아주셨던 선생님으로, 저도 언젠가 그런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선생님이 유치원을 그만두셨을 때, 너무 슬퍼서 엄청 울었던 건 지금도 엄청 잘 기억하고 있어요.

 

거기서부터 갑자기 바뀌어서,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에 지원하겠다고 생각한 계기를 알려주세요.

 

엄마와 오빠가 인터넷에서 찾아서 ‘이런 것도 있네’하고 알려주셨어요. 오빠가 원래 케야키자카46의 팬이었던 것도 있고, 저도 TV에서 노기자카46, 케야키자카46을 보면서 어딘가 동경하고 있던 것도 있었지만,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계속 보육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설마 제가 오디션을 보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응모용 사진을 엄마가 수동 카메라로 찍어주셨는데 친구랑 놀고 돌아와서 기일이 촉박하다는 걸 깨닫고 급하게 찍어서, 급하게 찍은 분위기가 나와버렸을지도 모르겠네요(웃음). 그 사진으로 세미나에 응모했더니 추첨에서 당첨되어서, 무려 그 후에 대학 입학식과 세미나가 겹쳐버리는 사건이 발생. 둘 다 같은 4월 1일이었어요. ‘어떡하지…’ 하고 고민하다가 둘 다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일단 대학 입학식에 갔습니다. 그 후에 오리엔테이션을 패스하고 중간에 나와서, 세미나로 급하게 갔어요. 조금 늦었지만 어떻게든 맞춰서 세미나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세미나에서는 스탭분이 손에 든 자료를 보면서 한 명 한 명 체크해서 ‘뭘 보고 계시는 걸까’하고 심장이 쿵쾅거렸어요.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귀여운 복장이었는데, 저만 입학식에서 돌아와서 정장을 입고 들떠있는 느낌이 들어서, 괜히 긴장되었습니다. 그 세미나의 마지막에 사진을 찍었는데 ‘나만 정장…’이라는 게 걸려서, 굉장히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세미나가 끝나고 ‘1차 오디션은 면제입니다’하고 연락이 와서, 오디션 시드권을 받았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저 놀랐습니다.

 

 

오디션 중에는 긴장하고만 있었을 뿐

하지만, 의외로 배짱이 있었을지도?!

 

오디션을 위해 준비했던 게 있나요?

 

노래 심사를 위해 노래방에 계속 다녔어요. 혼자 가는 건 조금 부끄러웠기 때문에 엄마에게 부탁해서 같이 갔어요. 첫 심사에서는 ‘세상 누구보다 꼭’을 골랐습니다. 엄마가 자주 부르는 걸 많이 들어서 저도 좋아하게 됐습니다. 참고로, 이 곡은 심사에선 아카펠라로 불렀습니다. 정말 정말 긴장했어요. 최종 심사에선 오오하라 사쿠라코 씨의 “눈동자”를 불렀는데 이 곡은 꽤 열심히 연습했어요. 엄마한테도 조언을 많이 받았습니다. 객관적이 되어보자고 생각해서 제 노래를 녹음해서 듣고 ‘전혀 안 돼’라고 우울해하거나, 어쨌든 필사적이었어요.

오디션에 참가하는 아이들은 다들 정말 귀엽고, 대기실에는 오디션에 익숙한 것 같은 아이들이 많아서 계속 ‘하…’하고 압도당했어요. 어느 심사든 엄청나게 긴장했습니다. 너무 긴장해서 면접에서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요. 잘 안 돌아가는 머리를 쥐어 짜내서 필사적으로 대답했어요. 그랬다는 건 잘 기억하고 있어요(웃음). 2차 심사 때는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하고 당황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는데, 해보니까 의외로 ‘할 수 있을지도!’라고 생각했어요. ‘여기가 노력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라고 느끼면 저한테 시동을 거는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웃음). 스스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주변에서는 ‘배짱이 있네’라고 들을 때가 꽤 있어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심사에서 계속 붙어서 ‘어디까지 갈 수 있으려나?’라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던 중, 멋지게 합격!!

 

최종 심사는 합격자는 번호가 불리면 스테이지에 올라가는데,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은 보통 긴장되는 게 아니었어요. 거기까지 도착하면 역시 합격하고 싶은 마음도 강해지잖아요. 제 엔트리 넘버는 16번이었는데 ‘16번’이라고 불리던 순간에는 너무 놀라서 온몸이 떨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스테이지에 올라갔더니 세계가 바뀐 것처럼 느껴졌고 ‘멤버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해나갈 수 있을까?’라는 마음도 있었고, 불안도 즐거움도 두근거림도 여러 가지 기분이 한 번에 몰려왔습니다. 합격을 가족들에게 알렸더니 모두 기뻐해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뻐했던 게 오빠였어요. 굉장히 텐션이 올라있었습니다(웃음).

 

 

연수생부터 시작해서 ‘케야키자카46’로

앞만 보고, 계속 달렸습니다

 

처음엔 연수생부터 시작했네요.

 

맞아요. 저 나름대로 여러 복잡한 마음도 안고 있어서,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하고 진심으로 생각했어요. 먼저 멤버가 된 동기들을 조금이라도 따라잡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레슨을 받았지만, 대학에 다니면서 레슨을 받느라 매일이 빡빡한 일정. 보육교사의 실습과 연수생 라이브의 안무를 외워야 하는 게 겹쳐서 벅차고 힘들었어요. 그래도 함께 레슨을 받던 모두가 정말 긍정적이고 열심히 해서 ‘동료가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이 솟구쳤어요. 처음으로 팬분들 앞에 섰던 건 잊을 수 없는 연수생 라이브. 스테이지 위에서 조명을 받고 그런 저희를 팬분들이 사이리움을 들고 응원해 주시던 풍경이 반짝반짝거려서요. 그때 ‘나, 아이돌이 됐구나’라고 진짜로 실감이 났어요.

 

희망했던 케야키자카46에 가입하는 것이 결정되고, 본격적으로 아이돌로서의 활동이 스타트. 그때부터는 어땠나요?

 

스트리밍으로 개최됐던 케야키자카46의 라스트라이브가 멤버로서 배정되고 첫 라이브였어요. 그룹이 다시 태어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하는 불안감도 있었고 오디션을 보기 전부터 정말 좋아했던 그룹이 끝나버린다는 것에 대한 서운함도 컸습니다. 하지만 선배님들의 기분을 생각해 보면 그건 헤아릴 수도 없는 마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후배인 저희가 끙끙 앓을 수도 없을 것 같았어요. 억지로라도 기분을 바꾸려고 노력해서 ‘사쿠라자카46’라는 새로운 그룹으로 노력해 나가겠다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때부터는 아무튼 변화가 너무 빨라서 필사적이었어요. 그런 국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룹 활동은 항상 정말 즐거웠습니다.

 

멤버 모두 친하고요.

 

맞아요. 그리고 그건 선배님들이 모두 정말 상냥하셔서 저희 후배들이 편하게 있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셔서 그런 것 같아요. 선배님들한테는 항상 감사한 마음이에요. 막 들어갔을 때는 동경하는 선배뿐이어서 긴장해서 눈을 보고 얘기도 못하고, 한마디 나누는 것도 정신이 없었는데요, 요즘엔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정말 좋아하는 (와타나베) 리사 씨와도 많이 같이 지내게 돼서 감동. 엄청 장난치면서 같이 까불어주는 리사 씨는 저에게는 친언니 같은 존재예요. 졸업하셔서 정말 아쉽지만 리사 씨의 앞으로의 행복을 바라고 있습니다!

 

사적으로도 친한 멤버는?

 

오오누마 아키호와 동갑이고 연수생 때부터 함께였기도 해서, 밥을 같이 먹거나 카페에 가거나 해요.

 

그룹 활동을 계속하는 중에 우울해진 적도 있나요?

 

물론 있습니다. 사쿠라자카46이 되고 처음으로 MV에 참여했던 게 “Buddies”였는데 그게 첫 MV 촬영이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던 중에 ‘적은 인원으로 자유롭게 춤춰주세요’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실제로는 곡의 해당하는 파트를 부르면서 춤을 춰야 했었는데 ‘자유롭게 춤추라니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어떡하지?’하고 작게 패닉이 왔어요. 춤추는 건 빙글빙글 돌거나 하면서 어떻게든 했는데 촬영이 끝나고 나서 춤에 정신이 팔려서 노래를 전혀 못 불렀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파트는 절대 MV에 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더니 ‘나, 뭘 한 거지…?’하고 크게 패닉. 주변의 멤버가 당연한 듯이 하는 걸 못 했다는 게 한심하고 분해서, 영문을 모를 정도로 눈물이 흘러넘쳤습니다. 그날은 그 장면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서도 계속 울고 있었는데, 다음날에도 촬영이 계속됐어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너무 많이 울었던 바람에 눈이 퉁퉁 부어버렸어요. 제 프로의식의 부재에 우울해져서…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제 모습이 너무 티가 나서 모두에게 들켜버렸어요. (사이토) 후유카 씨 같은 선배나 매니저분들이 ‘괜찮아, 그럴 수도 있는 거지’하고 격려해 주셨어요. 위로해 주시는 자상함에 또 울어버렸어요. 아무튼 계속 울고 있었네요. 그리고 2nd 싱글 ‘BAN’의 MV 촬영의 안무를 배울 때도 슬럼프에 빠져있었어요.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데, 신기할 정도로 간주 부분의 춤이 몸에 익지를 않았어요. 혼자 출 때는 되는데 다 같이 추면 안 돼서.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으로 타이틀곡 선발 멤버가 되어서 부담감이 커서 제가 의식하는 것 이상으로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나 더. 3rd 싱글의 ‘PERIMETRON’의 팀 촬영을 했을 때, 표정 짓는 게 정말 어려워서 뻣뻣해져 버렸는데 촬영이 끝나고 OSRIN 씨가 저를 불렀어요. ‘너는 좀 더 여러 가지 표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지금 이대로는 아까워’라고 말해주셨어요. 그 촬영 중에 계속 ‘나, 못 하고 있구나…’라고 막연하게 느꼈던 것도 있어서, 한심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야기가 끝난 직후에 화장실로 달려가서 혼자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많은 눈물을 흘렸네요(눈물)

 

저, 평소에는 그렇게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닌데요. 이렇게 돌아보면 엄청 울었네요(웃음). 그것도 분해서 운 것밖에 없네요. 그래도 그건 향상심의 반증이기도 한 것 같아요. 분하다거나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경험을 거쳐서, 잘 못했다고 너무 우울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어요. 지금은 끝까지 반성하고 나면 그 후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멋져요! 레나 씨가 일 중에서 좋아하는 건 어떤 건가요?

 

어떤 일도 진심으로 즐거운데요, 팬분들과 함께하는 라이브가 역시 정말 좋아요. 라이브 시작 전에 멤버 모두 원진을 만드는 순간에 우선 엄청나게 기합이 들어가고, 처음 Overture가 흐를 때 스스로 마음을 북돋아 줘요. 그 순간은 두근두근하지만, 그건 좋은 긴장감이에요. 코로나 때 라이브가 없던 시기엔 계속 ‘라이브 하고 싶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라이브가 다시 가능하게 되어서 지금은 팬분들이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대신 스틱 벌룬으로 소리를 많이 내주시는 게 정말 기뻐서, 텐션이 올랐어요. 라이브의 준비는 힘든 부분도 많지만 스테이지 위에 올라가서 팬분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전부 날아가 버릴 정도로, 엄청나게 즐거워요! 그러고 보니, 한 번이지만 라이브 때 객석에 있는 오빠를 발견해버린 적이 있어요. 꽤 앞쪽 자리에 앉아있어서 엄청 어색했어요(웃음).

 

전국 투어에도 나오셨어요!

 

첫 전국 투어는 모두 서로를 격려하면서 열심히 했던 라이브였다고 생각해요. 안무가 TAKAHIRO 선생님이나 연출가분들이 매회 공연이 끝난 직후에 조언을 해주시고 반성할 점을 개선해나가면서 스테이지를 업그레이드 해나갔습니다. 투어라고 하면, 그 지역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은 추억이거든요. 후쿠오카에서 먹었던 ‘신신’ 라멘이 너무 맛있어서 리필했어요(웃음). ‘좀 있다가 라이브에서 많이 움직이니까 괜찮아’라고 저한테 좀 물러졌었어요. 어디서 먹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도미챠즈케도 일품이었습니다.

 

백스 라이브도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스테이지에 서보니 어땠나요?

 

‘사쿠라 에이트 이외의 멤버도 이렇게 한 명 한 명 빛나요!’라고 어필할 수 있는 곳으로서 마음껏 퍼포먼스 할 수 있어서, 최고로 즐거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쭉 마이페이스

생각을 하는 만큼 우유부단해졌을지도

 

조금 전에 오빠의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가족에 대해 물어봐도 될까요? 가족 구성원에 대해 알려주세요.

 

부모님과 2살 위의 오빠까지 네 명입니다. 어머니는 상담을 많이 해주시고 제가 고민할 때는 자기 일처럼 같이 생각해 주세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친구 같은 존재면서 가장 의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사나 매너, 예의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엄격했어요. 윗분을 대하는 태도, 감사의 인사를 귀담아듣는 것, 집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가지런히 두는 것 등은 어머니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몇 번이나 들어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것 같아요. 아버지는 그런 저희의 대화를 지켜봐 주셨어요. 아버지는 재미있는 분이에요. 그렇지만 우스운 사람은 아니에요… 뭐랄까… 비교적으로 저를 응석받이로 만들어주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어요. 오빠는 2살 위이고 지금도 사이가 좋아요. 굉장히 말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으로 야구를 정말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는 항상 오빠 뒤에 붙어서 놀았어요. 오빠가 친구와 하는 전쟁놀이에 끼워달라고 하거나, 남자애 같은 놀이를 할 때가 많았으려나요. 그래도 오빠는 온화한 성격으로 ‘와~’하고 싸움을 걸어오는 타입은 아니었어서, 부드러운 전쟁 놀이였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알려주신 태어났을 때의 에피소드를 알려주세요.

 

새벽 5시쯤 태어났던 것 같아요. 예정일보다 20일 정도 일찍 태어나서 2340g 정도로 작았던 것 같은데, 굉장히 건강했다고 합니다.

 

“레나”라는 이름의 이유는?

 

어머니가 “레”라는 글자를 마음에 들어 해서 이 한자를 넣고 싶었던 게 원래 계기였던 것 같아요. “나”는 분명 울림이 좋아서 합친 거 아닐까요. 아름답고, 마음도 아름답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풍요로운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는 것 같아요. 가족이나 친구들은 “레나”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요.

 

학원은 어떤 걸 다녔나요?

 

유치원 때는 그림 교실에 다녔어요. 하지만 그건 물감으로 즐겁게 좋아하는 걸 그리는 놀이 느낌이었을까요. 그리고 발레와 피아노도 배웠는데 발레는 정말 싫어했어요(웃음). 오빠가 다니던 수영장 옆에 마침 발레교실이 있었던 것 같아요. 3살 정도의 저는 별로 흥미가 있었던 게 없던 같은데 부모님도 뭔가 배우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래서 ‘발레, 배워볼래?’하고 말씀하셔서 초등학교 1학년쯤까지는 발레교실에 다녔는데, 레슨에 가서 울고, 발표회도 싫어서 울고, 어쨌든 계속 울었어요.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잘 못해서 무대에 오르기 몇 분 전에 ‘올라가기 싫어’라고 크게 울었습니다. 모처럼 받은 화장도 전부 지워져버려서요. 부모님도 ‘그렇게 싫으면 그만둘까?’라고 생각하셔서 그만두게 됐어요. 그래도 스스로도 당시에 뭐가 그렇게 싫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레오타드도 귀여웠고 선생님도 착하셨고 싫어할 부분이 없었을 텐데, 당시의 저는 뭐가 그렇게 싫었냐고 물어보고 싶어요(웃음). 피아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 정도까지 배웠어요. 피아노는 싫어하진 않았는데요. 저, 연습을 거의 안 해서 거의 안 늘었어요. 당연한 거지만 좀처럼 잘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만뒀습니다.

 

어렸을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변한 부분이나 변하지 않은 부분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흠… 변한 부분은 조금씩이지만 낯가림이 나아지고 있는 걸까요. 옛날에는 꽤 심했는데 이 일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좋아져서 처음 보는 분들을 대할 때도 ‘내가 먼저 말을 걸어보자’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우유부단해졌어요. 옛날에는 뭐든 딱 정했는데, 왜 그럴까요(웃음). 아마 이런저런 걸 알게 되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늘어나서일까요? 그래도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에 지원하자고 결심했을 때는 전혀 망설이지 않았어요. 나이 때문도 있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라고 정했으니까 그때는 확 긍정적인 마인드였어요.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정할 때는 전혀 우유부단하지 않은데요. 대체로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실패하기 쉬우니까요. 그래서 거기선 별로 모험을 안 하고 항상 먹는 걸 시킬 때가 많아요. 반대로 마이페이스인 부분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어요. 마이페이스라는 건 주변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의미에선 좋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룹 활동을 하는 중에는, 메이크업 순서가 늦은 편이면 대기실을 나오는 게 가장 마지막이 되어 버리는 경우는 자주 있어요. 뭘 해도 늦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서두른다고 생각하는데도, 금방 늦어져서. 예를 들어 ‘오늘은 몇 분에 출발하는 차를 타자’고 스스로 정했는데, 두 대 지난 뒤의 전차를 타게 되어버렸다, 같은 일은 자주 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은 청춘을 엔조이!

공부만은 좀 서툴렀습니다

 

학창 시절의 추억을 알려주세요

 

사실 저는 초등학교 때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어서요. 그래서 중학생이 되었을 때 새로운 환경에 뛰어들어서 변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중학교 수험을 보기로 결심.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수험 공부를 시작했어요. 목표로 하고 있던 중, 고등학교 일관 여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6년간은, 계속 부활동을 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의 저는 그다지 어떤 것에 열중하는 게 없었는데, 부활동은 꼭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가능하면 운동부가 좋겠다고 생각해서 오리엔테이션을 돌면서 치어같이 의상이나 도구가 귀여운 배턴 트월링부에 끌렸어요. 항례의 해외연수를 갈 수 있다는 특전도 중학교 1학년인 저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이어서 입부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힘든 부활동이었어요. 학교를 가는 평일은 물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도, 매일 부활동. 강호 학교는 아니었지만 전국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고, 문화제에서 발표하는 무대도 있고 해서, 가는 날이나 가지 않는 날이나 어쨌든 연습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줄곧 동경하고 있던 댄스부로 옮겼어요. 댄스부는 고등학생이 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들어갈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었어요. K-POP의 좋아하는 곡에 맞춰 춤추거나, 컨템포러리나 재즈댄스 같은 공연에도 도전하고, 다 같이 와글와글하면서 굉장히 즐거웠어요. 춤추는 건 왠지 좋아했어요. 배턴트월링부는 선후배 상하관계가 엄격했는데 댄스부는 전혀 달랐어요. 후배한테 불려갈 때도 있었는데 ‘뭐 어때’라는 생각이었어요(웃음).

 

청춘을 만끽하셨네요.

 

네. 부활동도 열심히 했고, 인간관계도 좋았어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절친이 되었는데요.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는데도 계속 함께였어요. 그 아이가 언니 같은 캐릭터고 제가 동생 같은 캐릭터여서 굉장히 의지하고 있었고, 과제 때문에 곤란할 때나 부활동에 아이디어를 내야 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라든지, 여러 가지 일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참고로 그 관계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자주 바보 캐릭터라고 놀림받고 있는데, 학교 성적은 어땠나요?

 

공부는 계속 못했고, 교과서를 펴면 바로 잠이 오거든요. 예법 빼고는 거의 다 못했어요. 특히 수학이랑 영어는 엄청나게 못해서, 국어나 사회 같은 문과 과목이 조금은 점수가 나았던 것 같은 느낌이에요.

 

 

 

필요한 “존재”이기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할 거예요

 

점점 더 빛나고 있는 레나 씨! 앞으로 사쿠라자카46 중에선 어떤 존재가 되고 싶나요?

 

제가 그룹에 들어가는 게 결정된 첫 쇼룸에서 “존재”라는 말을 색지에 썼었거든요. 그룹에 있어서 필요한 존재이고 싶다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제 안에 있어요. 거기에 더해서 지금은 아름다움을 갖춘 존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저한테 의외로 욕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도 새로운 발견이었고요. 그때까지는 그다지 자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레슨을 거듭할수록 점점 ‘좀 더 이렇게 하고 싶다’라든지 ‘좀 더 이런 식으로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라이브가 끝난 후에 ‘다음엔 저 파트를 이렇게 해보자’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저 이런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많아졌어요. 멤버로서의 활동 이외에도 모델이나 연기 일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모르는 분들에게도 저를 보면 즐겁거나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TBS 방송 “라빗또!”의 레귤러를 경험한 것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을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처음에 “라빗또!”의 목요일 레귤러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기쁜 것보다도 ‘나로 괜찮은 걸까…?’하는 기분이 더 컸어요. “거기 돌면, 사쿠라자카”이외의 방송에는 거의 출연한 적이 없는 내가 생방송이라니, 겁이 많아지고 불안했어요.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기린의 카와시마씨나 야다 아키코 씨를 시작으로, 주변 출연자분들이 매회 도와주셔서요. 제가 어떤 발언을 해도 그걸 받아쳐서 재밌게 해주셔서, 온에어 때마다 ‘감사합니다’하는 마음으로 가득했어요. 로케나 음식 레포트에서는 함께 출연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받이 받았고 매번 많이 배웠어요. 고정 출연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말을 걸어주시거나 하는 기회가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아이돌을 목표로 하고 싶은지 알려주세요.

 

아이돌이 된 순간부터 계속 사랑받는 사람으로 있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 존재가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면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이상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항상 겸손하고, 자신에게 엄격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해서 항상 성장해갈 수 있는 저로 있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적인 꿈은 있나요?

 

흠… 뭘까요. 언젠가 가능하다면 결혼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만, 지금은 일이 너무 즐거워서, 아직 전혀 현실적이지 않아요(웃음).

 

그런 레나 씨의 좌우명은?!

 

하지도 않고 후회하기보다는 하고 후회하자. 하지도 않고 후회하는 인생은 아깝다고 생각해요. 하지 않을 바에는, 도전했지만 실패하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지 않나요? 이건,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을 본 것을 계기로 생각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이 사진집을 구매해 주신 분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몇 번이나 사진집을 열고 싶어지고, 다 읽었을 때는 행복한 기분이 퍼지는 따뜻한 한 권을 목표로 촬영에 도전했습니다. 이 마음이 여러분에게 닿기를. 그리고 이 사진집이 당신에게 계속 곁에 두고 싶은 책이 되기를. 사랑을 담아♡

 

 

 


레나님은 사쿠라자카에 꼭 필요한 존재예요..❣

앞으로도 원하는 일 많이 하면서 즐겁게 활동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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